[복음 이야기] (8) 팔레스티나 기후
일교차 최대 40도, 날씨 기복 심해
- 성경의 땅 팔레스티나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대이다. 사진은 3월 늦은 비가 내린 봄날, 푸르름을 뽐내고 있는 이스라엘 평원. 평화신문 자료사진
성경의 땅 팔레스티나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 지대다. 다니엘 예언서 3장에 나오는 '세 젊은이의 노래'에서 처럼 '추위와 더위, 이슬과 서리, 비와 바람, 얼음과 눈' 등 대조가 심한 기후대이다.
성서학자 다니엘 롭스는 팔레스타인 지대의 하루 일기를 "새벽의 갖가지 색조는 참으로 아름답지만 황혼은 짧고 거의 순간적이다. 왜냐하면 태양이 지평선 저쪽으로 떨어지자마자 암흑이 대지를 뒤덮기 때문이다. 밤은 놀라울 만큼 장엄한 기운에 싸이고, 칠흑의 하늘에는 별이 가득해 산상에는 마치 빛의 안개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서술했다.
이 지역은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 있으나 통상 두 계절로 나눈다. 긴 여름과 겨울이다. 그 중간 시기는 극히 짧다. 3월이면 온갖 식물이 일시에 자란다. 아주 메마른 땅이라도 몇 주간은 푸른 주단으로 뒤덮인다. 대지는 튜울립과 야생 당창포(글라디올러스), 붉은 바람꽃(아네모네) 등으로 화려한 색채를 뽐낸다. 봄의 비옥한 대지는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여온다오.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아가 2,11-13)라고 노래한 표현 그대로다.
하지만 대지의 일교차는 엄청 심하다. 정오와 한밤중의 기온차가 40℃까지 차이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유다인 율법은 채권자에게 담보로 잡은 외투를 저녁에는 채무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하고 있다.
자연의 기복으로 인한 계절 차이도 크다. 겨울철 예루살렘 성전 앞뜰에 무릎 꿇은 경건한 예배자들이 계절풍으로 얼음처럼 찬 비를 맞을 때, 불과 40㎞ 떨어진 예리코의 부자는 아마포 옷을 입고 지낸다. 예루살렘과 예리코는 무려 1000m가 넘는 고도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복음서에도 4월의 어느 날 밤 베드로가 예수님의 소식을 알기 위해 대사제 카아파의 집 안뜰에 들어가 불을 쬐고 있었다(마르 14,67)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바람도 이스라엘의 기후 변화에 큰 작용을 했다. 가을에는 서풍과 남서풍이 불어 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산들바람인 이 바람을 유다인들은 '주님의 입김'이라 불렀다. 겨울에는 차고 건조한 동풍 '카딤'이 불어 기온을 일시에 10℃나 떨어뜨린다. 이 바람이 헤르몬 산에서 갈릴래아 호수로 불어 내릴 때는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해 무서운 풍랑을 일으킨다(마태 8,23-27 참조). 이보다 더 나쁜 바람이 봄에 이집트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캄신'이다. 우리나라의 황사같은 이 바람은 하늘을 잿빛으로 변하게 하고 모든 밭이 머금고 있던 수분을 일시에 앗아간다.
강수량은 연평균 420㎜. 갈릴래아 산지는 600㎜가 내려 지중해 다른 지역들보다 많은 비가 내린다. 하지만 이 대부분이 우기인 10월부터 3월 사이에 내린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마태 7,27)는 복음서의 서술처럼 우기 때 내리는 비는 마구 쏟아지는 폭우이며,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을 떠내려 보낼 만큼 순식간에 홍수를 이룬다.
비 중에 가장 달가운 비는 봄에 내리는 '늦은 비'이다. 이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끝이다.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초막절 축제 마지막 저녁에 언덕 또는 지붕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의 연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관찰했다. 그 방향에 따라 그 해에 비가 많이 내릴지 그렇지 않을지를 점쳤다. 서풍이 불지 않는 협곡 저지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이용할 수 있는 물은 요르단 강물이나 샘물뿐이었다.
성경에 물에 관한 시가 유독 많은 것처럼 유다인에게 '물'은 귀중한 자원이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생수'에 비유하셨다(요한 4,10-14). 건조한 기후라 물이 귀해 유다인들은 사람과 가축을 위해 또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은 우물을 파고, 또 샘물이나 강물을 마을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됐다. 마을마다 '샘의 주인'을 정해 관리했고, 그들이 정해진 시각에 우물 뚜껑을 열면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급히 달려가곤 했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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