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다윗의 죽음과 유언(1열왕 2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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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3-31 | 조회수3,253 | 추천수1 | |
역사서 해설과 묵상 (90)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1열왕 2,2-3).
열왕기 상권 2장은 기원전 970년경 임종을 앞둔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유언이다. 유언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힘을 내어 대장부가 되어라. 이 말은 모세가 죽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힘과 용기를 내어라.”(여호 1,6-7)는 말씀과 동일한 표현이다. 둘째, 하느님의 명령을 잘 지켜라. 이것은 신명기 학파 역사가들의 설교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권고다. 셋째, 상과 벌을 분명히 하라. 이것은 나라를 올바로 다스리고 임금의 권위를 세우려면 필수적인 것이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고 욕심부리지만, 죽을 때가 되면 ‘껄껄걸’ 하고 죽는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살 걸……’, ‘좀 더 사랑하며 살 걸……’, ‘좀 더 베풀고 살 걸……’ 하며 죽는다고 한다.
몇 년 전 영어권에서 화제가 된 책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말기환자들을 돌봤던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모아 펴낸 책이다. 브로니 웨어는 수년간 말기환자 병동에서 일하며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모습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가 지켜본 사람들은 임종 때 놀라울 정도로 맑은 정신을 갖게 됐는데,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후회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거의 비슷했다.
가장 큰 후회는 ‘내 뜻대로 살 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지 말고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삶이 끝나갈 쯤에야 얼마나 많은 꿈을 이루지 못했는지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않기로 한 선택 때문에 꿈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일 좀 덜 할 걸……’ 하는 후회는 모든 남성에게서 나타난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회사에서 쳇바퀴를 도느라 아이들이 어릴 때 친밀하게 지내는 시간을 놓친 것 그리고 부인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했다.
‘터놓고 말할 걸……’ 하는 후회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그 동안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려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내면에 쌓인 냉소와 분노가 병을 만들었다고 여겼다.
‘친구들 챙길 걸……’ 하는 후회는 임종 직전에야 오랜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땐 친구들의 연락처도 수소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도전하며 살 걸……’ 하는 후회도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후회였다. 여러 이유를 대며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하고 소심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좀 더 행복하게 놔두지 않은 것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크게 웃고 삶의 활력소를 찾고 싶었다는 걸 깨닫고 이 세상을 떠났다.
브로니 웨어가 말하는 이러한 후회말고도 우리 신자들은 ‘좀 더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낼 걸……’ 하는 후회를 할 것이 분명하다.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면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는데 이 세상에 살 때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인 기도에 소홀히 한 것을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묵상주제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내가 사는 한. 나의 하느님께 찬미 노래 부르리라, 내가 있는 한. 내 노래가 그 분 마음에 들었으면! 나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네”(시편 104,33). [2014년 3월 30일 사순 제4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역사서 해설과 묵상 (91)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1열왕 2,3).
열왕기 상권 2장은 다윗이 임종 전에 솔로몬에게 주 하느님의 명령과 법규를 지키고 그분의 길을 걸으라고 신신당부하는 내용이다. 그리하면 솔로몬이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말씀처럼 우리도 부모로서 자녀교육에 나름대로 소신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녀교육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음식에 공이 들어가야 맛이 나듯이, 자녀교육에도 공이 들어가지 않으면 실컷 고생만 할 뿐 보람이 없다. 자녀에게 공을 들여야 자녀가 성숙한 인격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에게 공을 들인다고 해서 무조건 자녀를 감싸주고 ‘오냐 오냐’하라는 뜻이 아니다. 안 되는 것은 아무리 떼를 써도 안 된다는 원칙이 서 있어야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깨우쳐주는 소신이 있어야 제대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윗은 자녀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장남 암논이 이복 여동생 타마르를 겁탈했고(2사무 13장), 그 때문에 타마르의 오빠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다음 아버지 다윗을 거슬러 반란을 일으켰다(2사무 15장).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솔로몬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형 아도니야를 죽였다(1열왕 2장). 솔로몬은 말년에 마음이 흐려져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고(1열왕 11장), 결국 그 아들인 르하브암 때 솔로몬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엘리와 사무엘이 자식교육에 실패했던 것처럼, 다윗 역시 자식교육에 실패했다.
프랭크 제임스와 제시 제임스는 19세기 미국 서부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던 무법자 형제다. 이들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대담한 은행강도와 열차강도를 일삼았다. 프랭크는 1861년 남북전쟁이 터졌을 때 남군 게릴라 부대에 가담해 콜 영거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훗날 콜 영거는 악명 높은 ‘영거 브라더스단’을 조직한 사람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프랭크와 제시는 동료들을 규합해 1866년 미주리 리버티의 은행을 털어 무법자로서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같은 해 콜 영거가 가담하고, 콜 영거의 형제들인 ‘영거 브라더스단’도 몇 년 뒤에 차례로 합류했다. 프랭크와 제시 갱단은 여러 은행을 털고 1873년에는 열차강도를 시작했으며, 역마차와 상점을 습격하고 사람들을 강탈했다.
이들 형제가 악명 높은 무법자가 된 데는 어릴 적에 그만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 형제의 아버지 제임스는 목사요 이름난 설교가였다. 어느 날 제임스 목사는 길 잃은 개 한 마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아들 둘이 그 개를 무척 좋아했다. 그 개는 검은 색이었지만 꼬리에 하얀 털 세 개가 있었다. 제임스 목사는 어느 날 신문에서 잃은 개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았는데, 자기가 길에서 데려온 개라는 것이 분명했다. 제임스는 두 아들의 도움을 받아 꼬리에 있는 하얀 털 세 개를 조심스럽게 뽑아냈다.
그 개의 주인은 비슷한 개가 제임스 목사의 농장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왔다. 개는 주인을 보자 꼬리를 치며 반가워했다. 개 주인은 개를 데려가려 했지만, 제임스 목사는 두 아들이 그 개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개 꼬리에는 하얀 털이 세 개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자신의 개가 분명했지만 하얀 털을 발견할 수 없었던 개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떠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제임스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개를 얻을 수 있었으나, 아들 둘을 잃었다.”
묵상주제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 따로, 삶 따로’가 되면 자신을 망치고 자식도 망칠 수 있다. ‘성당에서 신앙 따로, 세상에서 삶 따로’가 되면 곤란하다. 성당에서는 믿음 깊은 신앙인처럼 행동하다가 세상에 나가면 신자 아닌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산다면 초보적 신앙을 벗어나기 어렵다. [2014년 4월 6일 사순 제5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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