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18) 유다인 결혼 풍속
하느님 뜻과 일치하는 일부일처제 따라
- 유다인의 오랜 종교적 전통은 하느님의 뜻과 자연법에 일치하는 남녀의 이상적 결합을 ‘일부일처제’로 여겨왔다. 사진은 베들레헴 가타리나 성당에서 거행되고 있는 혼인성사 장면.
유다인의 오랜 종교적 전통은 하느님의 뜻과 자연법에 일치하는 남녀의 이상적 결합을 ‘일부일처제’로 여겨왔다. 창세기에 나오는 여인의 창조이야기(창세 2,21-24)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된다”(창세 2,24)는 말씀에서 일부일처 혼인제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확히 읽을 수 있다.
가정생활의 교훈서인 토빗기는 일부일처 혼인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 또 예언자 호세아와 예레미야, 이사야, 에제키엘은 일부일처의 이상을 ‘하느님과 이스라엘 간 계약의 표상’(예레 2,2; 에제 16,8; 호세 2,9; 말라 2,14)으로 묘사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두가이들은 자기들이 일부일처제도를 지키는 것을 크게 자랑했고, 대사제는 반드시 아내를 한 사람만 둬야 했다.
예수님께서도 부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전 생애를 통해 완전히 결합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혼인에 대한 여러 가르침과 비유를 통해 볼 때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일부일처를 지지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교회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로 맺은 사랑을 ‘성사’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다인 공동체에서 일부다처 관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카인의 자손 라멕은 두 아내를 둔 자로 처음으로 소개된다. (창세 4,19) 솔로몬(1열왕 11,1)과 기드온(판관 8,30-31), 사무엘의 아버지 엘카나(1사무 1,2)도 여러 아내를 뒀다.
또 아내가 임신하지 못할 때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창세 1,28)는 성경 말씀을 따라 부득이 첩을 두는 일도 있었다. 그 대표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첩을 뜻하는 히브리말 ‘필레게쉬’가 유다인들이 쓰지 않는 외래어임을 고려, 노예제도가 축첩 관습을 조장했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성경 시대 결혼 풍속은 ‘조혼’이 일반적이었다. 랍비들은 “자식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는 동안 아들을 결혼시키라”고 가르쳐 18살을 남자의 결혼 적령으로 여겼다. 여자들은 이보다 훨씬 빨라 율법은 ‘12살 중반’이 출가 적령이라고 한다. 이 관습을 따라 동정녀 성모 마리아께서도 성령의 인도로 결혼 적령인 12살 무렵 약혼해 10대 중반에 예수님을 낳으셨다. (외경 「야고보 원복음」 참고)
유다인 가정은 족장과 판관 시대 때부터 이어진 풍속을 따라 아버지가 자녀의 결혼 여부는 물론 아들의 신붓감도 결정했다. 하지만 성경 시대에도 배우자를 스스로 정하는 경우도 있었나 보다. 그래서 탈무드는 “아내를 고르기 전에 심사숙고하라. 미모를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것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남자의 아버지나 신랑이 직접 신부를 선택하면 결혼 준비를 위해 ‘약혼’을 한다. 약혼 기간은 대략 1년간이었다. 구약의 율법은 이 약혼 기간을 결혼한 배우자가 갖는 권리와 의무를 거의 동등하게 인정했다. 그래서 약혼 기간에 낳은 아이를 적자로 인정했고, 약혼한 남자가 죽으면 과부로 취급됐다. 정혼한 여자가 부정을 의심받으면 ‘쓴 물의 시험’(민수 5,11-31)을 받았다. 그리고 간음한 사실이 드러나면 돌로 쳐죽임을 당했다.
성경 시대 유다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민족 여인과 결혼해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동족과 결혼하는 것을 관습처럼 여겼다. (탈출 34,16)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의 신부로 동족 가운데서 레베카를 찾았고, 야곱도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 즉 외사촌과 결혼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에게서 첫아들 이스마엘을 낳았고(창세 16,15), 모세는 미디안인 이트로의 딸 치포라(탈출 2,21)와 에티오피아 여인(민수 12,1)을 아내로 맞았다. 다윗의 증조모 룻은 모압인(룻 1,4)이고, 다윗이 간음해 얻은 아내 밧 세바도 히타이트 출신 이방인(2사무 11,3)이었다.
사실 구약 율법이 절대적으로 금한 혼인은 이방인과의 결혼이 아니라 ‘근친혼’이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살붙이를 가까이하여 그의 치부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레위 18,6-18) 이 금령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했다.(레위 20,11) 혈족과 근친혼에 관한 이 세밀한 금령은 예수님 시대에도 효력이 있었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자기 맘대로 결혼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원치 않는 결혼도 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이 자식 없이 죽으면, 그의 형제나 상속자가 죽은 이의 아내와 혼인하여 그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했다.(신명 25,5-10; 마태 22,24) 이를 히브리말로 ‘레비라’라 하는데 이 율법의 의무는 매우 엄격했다. 만약 이 레비라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은 이의 아내는 원로들 앞에서 결혼할 남자의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된다”(신명 25,9)고 저주를 퍼부었다. 예수님께서는 레비라 결혼 풍속을 들어 부활 논쟁 시비를 건 사두가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꾸짖으셨다.(마태 22,23-33)
[평화신문, 2014년 6월 8일, 리길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