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의 세계: 본시오 빌라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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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6-30 | 조회수3,960 | 추천수2 | |
[성경의 세계] 본시오 빌라도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는 티베리우스 황제가 임명한 유다 총독이다. 신약성경은 그의 이름을 본시오 빌라도로 표기했다(루카 3,1).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식민지 통치자를 자주 바꾸는 정책을 썼지만, 후임 티베리우스는 오래 머물게 하는 정책을 썼다. 티베리우스가 임명한 첫 유다 총독은 그라투스(Gratus)였는데 11년간 재임했다. 예수님 수난시의 대제사장 카야파(Caiaphas)를 임명한 사람이다(요한 18,13).
빌라도는 그라투스의 뒤를 이어 26년 총독으로 부임했고 10년 뒤 실각했다. 삼니움족 폰티아 가문 출신으로 알려졌다. 폰티우스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에 살았던 삼니움족은 훗날 로마의 기사계급이 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부임하자 황제의 초상이 그려진 군대의 깃발(軍旗)을 예루살렘에 들여놓는다. 당연히 유다인들은 반발했고 치울 것을 요구했다. 소요가 확산되자 빌라도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첫 번째 충돌이었다.
두 번째 충돌은 심각했다. 빌라도는 수로를 건설해 예루살렘 물 부족을 막으려 했다. 주된 원인은 성전이었다. 제사를 위해 동물을 도살하고 청소하다 보니 많은 물이 필요했다. 빌라도는 성전 측에 비용을 떠넘겼다. 응하지 않자 강제로 뺏었다. 성전 금고를 턴 것이다. 유다인들은 신성모독이라며 시위를 벌였고 빌라도는 무력으로 막았다.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 사건이 터졌다. 유다인들의 집요한 주장에 빌라도는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원후 36년 사마리아인의 성지인 그리짐(Gerizim) 산에서 모세의 장막이 발견되었다는 소동이 있었다. 이를 보기 위해 군중이 모여들자 폭동을 우려한 빌라도는 군대를 보내 산정을 점거하고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학살이 자행되었다. 사마리아인들은 빌라도를 고발했고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로마로 소환된 뒤 총독에서 물러났다.
성경에서 그는 연약하고 동요하기 쉬운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유다인 축제일이 되면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관례가 있었다. 빌라도는 바라빠를 내세워 예수님을 풀어주려 했지만, 군중의 저항에 굴복하고 만다. 아내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전하자(마태 27,19) 손을 씻으며 군중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동방교회 전승에 의하면 빌라도의 부인은 훗날 그리스도교인 되었고 모범적인 삶을 살다 생을 마쳤다.
[2014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교황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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