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담긴 하느님 생각]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코헬렛 12,1.2.6)
떠오르는 생각
세상의 시간 계산법으로는 한 해의 끝, 전례력으로는 시작. 동일한 시간을 이렇게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생소하다. 시간의 시작과 끝에 대해 묵상하다가 한 생각에 이른다. 인간이 말하는 시간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 곧 존재의 출발점도 그분이시고 마지막 지점도 그분이시라는 사실이다. 내 안의 이 확신이 큰 위안이 된다. 인생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이라면 삶은 희망임이 틀림없다. 지금 당장 밝은 빛이 보이지 않아도 삶을 희망해야 할 이유를 예수의 성녀 데레사 기도 내용에서 찾는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라.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
시작인 동시에 끝인 시간, 지난 순간들을 반듯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다가올 날들을 기쁘게 맞아들일 준비를 할 때다.
1. 불확실한 인생, 그러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현실적이고 건강한 코헬렛은 뛰어난 현인이었던 듯하다.(코헬 12,9-10) 그는 우리 모두가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무지하고 무능력한 존재라고 거침없이 말한다.(11,1-6) 그가 인생의 불확실함을 분명히 일러주는 이유는 인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인간 편에서 불확실한 삶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데 있다. 코헬렛이 가르치는 내용은 자연현상의 관찰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다. 인간은 경험으로 비가 언제 어떻게 내리는지는 알 수 있지만 이를 막지는 못한다.(11,3) 또 언제 어떻게 불행이 닥칠지 알 수 없을뿐더러 자기의 일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미리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중하고 용기있게 일상을 개척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코헬렛은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너는 알 수 없다.”(5절)고 말하면서도 아침에 씨앗을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당부한다.(6절) 삶은 하느님의 신비스런 창조활동에 속하기 때문에 그분께 대한 신뢰로 살아갈 때 불확실한 인생이 하느님의 신비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2. 젊음을 즐겨라
인간이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가르침(11,1-6)을 주고 난 후, 코헬렛은 젊음과 노년의 삶을 대비시켜 설명하면서 다시 한번 삶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11,7-10) ‘젊음을 즐기라’는 코헬렛의 가르침이 자주 회의적 관점이나 쾌락주의 노선으로 잘못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오히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11장 9절에서 젊음을 즐기라는 초대가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라는 권고임이 잘 드러난다.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언뜻 자유방임적으로 보이는 이 구절의 핵심은 매 순간을 선물로 여기며 할 수 있는 한 기쁘게 살라는 메시지다. 지나간 시간은 되찾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재를 열정을 다해 즐기라는 권고다.
이러한 가르침이 코헬렛 안에 여러 번 나온다. 특히 3장 12-13절의 내용은 11장 9절과 유사하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나는 알았다. 모든 인간이 자기의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11장 9절에서 젊음을 즐기는 방법으로 마음과 눈이 원하는 것을 따르라는 말이 제시된다. 문장 전반부만 보면, 감각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라는 말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하느님의 심판’을 언급한 표현을 통해 저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곧 인간이 내적, 외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행동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삶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마음의 근심과 육체의 고통에 갇히지 말라는 말과 함께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11,10)라고 말한다. 이는 삶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현재 삶에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생을 즐겁게 살라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가르침이다.
3.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코헬렛은 젊은이들에게 젊음을 즐기라고 권고하는 동시에 한 가지 가르침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를 반복하여 말한다. 이 표현이 12장 1-7절에 세 번이나 나온다.(1.2.6절)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금 젊음을 즐기는 이들이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한다’(5절)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주를 기억함과 영원한 집으로 간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사실 같은 현실을 가리킨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는 명령 어조는 인생의 방향이 언제나 젊음에서 노년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곧 과거에 창조주가 하신 일을 기억하라는 의미보다는 노년을 향해 나가는 미래의 삶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죽음의 의미가 하느님과의 관계성과 연관됨으로써 긍정적인 메시지로 울린다. 곧 인간은 생명을 주신 그분께 다시 돌아가도록 인생이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12,7) 이렇게 인생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여정이라면 삶의 매 순간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는 적극적인 삶의 시각이 드러난다. 젊은 시절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창조주를 기억하기 때문이고 약함의 시기인 노년기를 기쁘게 맞기 위해 준비하는 것도 창조주께 돌아가는 인생임을 알기 때문이다.
생명을 상징하는 샘과 우물에 대한 비유가 12장 6절에 제시된다.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전 과정을 하느님의 계획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이어지는 7절의 내용은 각자가 살아간 삶에 대한 평가는 처음과 끝의 근원인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순간에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표현으로 본문을 시작하고(1,2) 끝을 맺는다.(12,8) 이는 인생의 덧없음을 비관적인 관점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만이 영원하시다는 낙관적인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코헬렛은 삶을 찬미하는 긍정적인 인생관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말과 글로 쏟아낸 저의 언어들이 생명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도록 내면의 물을 다시 채우고픈 갈망으로 가득합니다. 새롭게 보는 ‘봄’을 맞기 위해 얼마간 말의 고요 속에 머물려 합니다.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야곱의 우물, 2013년 12월호, 민남현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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