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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 천사를 초대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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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01 조회수2,867 추천수1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 천사를 초대하는 믿음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사도 12,6-7)


베드로의 무사태평과 탈출

초대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뒤 자신의 이름 뒤에 아메림노스(?μ?λιμνο?)란 말을 붙였다. 아메림노스란 ‘걱정하지 않는 자’란 뜻이다. 어떤 형제의 이름이 요셉이라면 그는 요셉 아메림노스라 불렸다. 이렇게 불려짐으로써 온갖 세상풍파 속에서도 걱정에 짓눌리기보다는 내적으로 힘 주시는 주님과 함께 하루하루 기쁘게 살고자 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 말씀은 베드로야말로 걱정하지 않는 자 곧 베드로 아메림노스임을 보여준다. 베드로가 어떤 상태로 감옥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눈여겨보라. 손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고, 그 쇠사슬은 옆에 있는 두 군인들과 연결되어 있다. 참으로 불편한 자세이다. 무엇보다도 날이 밝으면 목이 잘려 죽게 되는 상황인데, 그는 쿨쿨 잠들어 있다. 얼마나 깊이 잠들어 있었던지, 나중에 천사가 그의 옆구리를 찔러 깨워야 할 정도였다.

베드로 사도가 도대체 무엇을 믿기에 이처럼 태연자약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스승 예수님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가르침을 들었고 지금 그 가르침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도 걱정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대다수는 돈 문제, 자식 문제, 배우자 문제, 사업 문제, 건강 문제 등 온갖 걱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왜 베드로 사도처럼 되지 못하는가?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맡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한 말이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1베드 5,7) 우리가 베드로 사도처럼 생사의 주관자인 그분께 모든 것을 진정으로 내어 맡길 수 있다면 우리 또한 평화로운 마음을 누릴 수 있다.

골육종이란 병과 오랜 세월 싸워오던 안젤라 세이어즈가 의사로부터 드디어 운명적인 선언을 듣게 되었다. 그녀의 뇌에까지 종양이 생겨 앞으로 한 달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란 선언이었다. 이 말을 듣고 병실을 나온 안젤라는 빈 들판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겨울철을 맞아 이주를 준비하는 수많은 새들이 깃을 내리고 앉아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저 들판을 가득 채운 새들의 숫자가 얼마인지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하듯이, 그녀의 인생에 며칠이 남았는지 헤아리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사실 그 누가 자기의 남은 날수를 셀 수 있겠는가? 설령 남은 날수를 정확히 센다고 한들 그것이 인생에서 무슨 대수인가! 인생은 지금 이 자리에서 충만하게 살아 숨 쉬면 되는 것 아닌가.

그 후 그녀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오늘 죽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가고 있는가?’ 당연히 그녀의 답은 ‘나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였다.

의사로부터 살 날이 한 달 남았다는 진단을 받은 그녀가 현재 6년을 더 살았다. 다만 오늘을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결심이 한 달을 넘어서서 6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작은 장미, 로데

[감옥을 탈출한]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바깥 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하녀가 누구인지 보려고 문으로 갔다. 그 하녀는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너무 기뻐서,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안으로 달려가 베드로가 문 앞에 서 있다고 알렸다. 사람들이 “너 정신 나갔구나.” 하는데도 그 하녀는 사실이라고 우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베드로의 천사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줄곧 문을 두드리자 사람들이 문을 열어 그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사도 12,12-16)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는 곧장 마리아의 집으로 간다. 마리아는 마르코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다.(여기에 나오는 마르코는 마르코복음서 저자다.) 베드로가 곧바로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는 것은 그곳이 신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모임 장소임을 알려준다.

베드로가 현관문을 두드리자, 한밤중이었는데도 기도하고 있던 신자들은 헤로데 아그리파스의 병사들이 자기들을 붙잡으러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로데라는 하녀가 밖으로 나가 문을 여는 동안 그들은 안에서 마음을 졸이며 숨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로데는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이의 목소리가 베드로 사도의 목소리란 것을 알고는, 그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베드로 사도를 집안에 들이는 것을 깜빡 잊은 채 본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왔다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로데가 미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지만, 그 기도의 응답을 알려주는 사람을 향해 미쳤다고 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로데는 베드로 사도가 정말로 대문 밖에 와 있다고 계속해서 우겼다. 로데가 하도 강하게 주장하니 사람들은 생각을 바꿔서, 로데가 베드로의 천사를 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이 베드로가 죽은 것으로 간주했음을 드러낸다. 유다인들은 수호천사는 자기가 돌보는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그 돌보던 사람이 죽으면 칠 일 동안 여기저기 나타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베드로 사도는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자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는데, 결국은 사람들이 문을 열어 그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사도행전 12장은 베드로 사도를 위해 철야기도를 하던 많은 이 가운데 오직 로데란 여종의 이름만 전해준다. 왜일까? 그녀만이 기도가 응답받았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로데란 이름은 작은 장미를 의미한다.

미국 중서부 어느 농촌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신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기로 했다. 하느님께서 비를 내려주기를 간청하는 기도회였다. 기도회 당일이 되었을 때 우산을 들고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은 열한 살짜리 소녀였다. 그녀만이 기도회가 끝나면 하느님께서 비를 내려주실 것이라 믿었기에 우산을 갖고 왔던 것이다.


수호천사에 대한 이야기

사도행전 12장 15절에서 사람들은 로데가 베드로의 천사를 본 것이라고 말한다. 베드로의 천사는 베드로의 수호천사를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가 수호천사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기초한 것이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가 있음을 말하였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초대교회 신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수호천사의 돌봄을 받도록 해주었다고 믿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도 천사에 관한 진리는 교의상 최우선적인 진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내려온 고귀한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um)임을 천명하였다. 이는 교회 스스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확고한 진리라는 것이다.

[야곱의 우물, 2014년 2월호, 송봉모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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