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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 봉사, 배려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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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01 조회수3,022 추천수1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 봉사, 배려깊은 사랑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2-24)


바르나바와 안티오키아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지역인 안티오키아에 평신도 선교사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접하자 바르나바를 파견한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개종이 진정한 것인지를 조사하고, 예루살렘의 모교회(母敎會)와 일치를 형성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르나바는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평신도 선교사들이 세운 공동체라 해서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열린 눈을 갖고서 공동체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았다. 안티오키아 공동체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섞여있는 공동체인데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공동체에 똑같이 은총을 베풀고 계심을 본 것이다.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교회 안에서 정통 신앙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 안에서 하느님이 시작하신 일을 보았기에, 이방인 출신의 신도들에게 어떤 율법 규정도 부과할 마음이 없었다. 다만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만 격려했을 뿐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주님 안에 항구하게 머물러 있도록 격려한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 루카는 바르나바의 인간적이고 영적인 면을 칭찬하면서, 그러한 덕스런 모습 덕분에 안티오키아 교회 안에 새 신도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한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4).

바르나바의 훌륭한 모습을 소개하는데 ‘착한 사람’이란 표현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란 표현보다 먼저 나왔다. 이는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준다. 채근담에 보면 “덕은 재능의 주인이고 재능은 덕의 종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재능이 넘친다 해도 덕이 결여되면 지도자로서는 낙제다. 재능이 덕을 앞서게 되면 그 사람은 교만해진다. 주님의 봉사자는 모름지기 성령과 믿음에서 충만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선한 인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품은 봉사자를 뽑을 때 가장 우선적인 고려사항이다.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 겸손한 사람인지, 신뢰가 가는 사람인지,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인지 등이 성품 안에 포함된다. 성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봉사자로 뽑게 되면 팀원들 사이의 일치가 깨지고 공동체가 흩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공동체는 생산적인 면에 감정과 에너지를 쏟지 못하게 된다.

요즘 세상은 재력과 지력, 능력 등을 중시하면서 인품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존경받고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사목자가 존경받는 것도 그의 선한 인품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인품이 선하다 해도 강론을 못하거나 유능하지 못하면 존경을 못 받는다. “그냥 콱 막혀서 착하기만 하지,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안돼.” 하는 말이나 듣는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다.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재주와 능력을 갖고 하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뽑으신 열두 제자 중 누가 인간적으로 지혜롭고 유능했는가? 인간적인 덕목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그 덕목들이 선한 인품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봉사, 진정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봉사가 될지는 의문이다.

바르나바는 선한 인품을 갖고 있었기에 안티오키아 교회 안에 존재하는 은총을 볼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재주는 뛰어났지만 인간성이 나빠서 다른 사람의 약점만 보고 세상의 부정적인 면만 보는 사람이었다면, 안티오키아 교회가 갖고 있는 부족한 점을 수도 없이 찾아냈을 것이다. 일단 안티오키아 교회는 사도들이 세운 교회가 아니란 약점이 있다. 나아가 안티오키아 교회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두 출신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였다. 곧 유다인과 이방인이 함께 섞여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였다. 바르나바는 유다인으로서 선민사상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이방인 신자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도 있었다. 또 선입견 없이 바라본다 하더라도, 안티오키아 교우들은 이제 막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바르나바는 선한 인품과 열린 마음을 가진 자였기에 가장 기본적인 것, 곧 하느님 은총이 안티오키아 교회 안에 있음을 본 것이다.

바르나바는 본시 새로운 교회를 점검하도록 예루살렘 공동체로부터 파견받아서 안티오키아에 왔지만, 자신의 사명이 끝난 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대로 안티오키아에 머물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교회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기를 파견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허락을 청한 뒤에, 계속해서 안티오키아 교회에 머물면서 봉사한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4).


바오로의 합류와 교회 부흥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5-26)

바르나바는 급성장해 가는 안티오키아 교회를 돌보기 위해서는 혼자 힘 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또 영적으로 갓난아기인 신자들이 갑자기 늘어났는데 이들에게 깊이 있는 신자 재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사목자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바오로(사울)를 불러올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바오로는 고향 타르수스에서 7-8년째 살고 있었다.

바르나바가 바오로를 안티오키아로 데려오는데, 여기서 우리는 ‘위로의 아들’ 바르나바의 진면모를 다시금 볼 수 있다. ‘다시금’이란 단어를 쓴 것은 바르나바가 이전에도 바오로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 3년 후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사도들은 바오로를 두려워하며 피했었다. 그때 바오로의 회심의 진정성을 보장하며 예루살렘 공동체에 소개했던 사람이 바르나바다(사도 9,26-27 참조).

바르나바는 정말로 하느님 나라만을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다. 인간적 차원에서 볼 때 바오로는 바르나바보다 월등한 사람이다. 가문으로는 바리사이 집안 출신이고, 지성으로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당시 가장 명망이 높은 가말리엘의 수석 제자였다. 거기다 기질적으로 적극적이고 열정이 넘쳤으며, 젊어서 힘이 넘쳐났다. 이렇게 탁월한 사람을 안티오키아에 데리고 온다는 것은 세속적 시각에서 보면 위험한 일이다. 바르나바가 그동안 누렸던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생의 위대함을 재는 잣대는 우리가 성취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베푼 사랑이다. 우리는 업적을 쌓는 사람이 되기보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위가 높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바르나바의 모습은 오늘날 봉사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봉사자들 사이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일이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그를 깎아내리고 무시한다. 또 상대가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생기지 않도록 온갖 훼방을 놓는다. 오늘날 교회는 바르나바처럼 경쟁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봉사자들을 확실하게 세워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바르나바처럼 ‘위로의 아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필요하다.

“봉사는 무관심이나 실용적인 이기주의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봉사는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무관심이나 이기주의 따위는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야곱의 우물, 2014년 5월호, 송봉모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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