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비유 (11)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하느님 자비와 사랑 보여주는 결정적 비유
마태 20,1-16
예수님의 다른 많은 비유와 마찬가지로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고 친근한 환경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돌이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산등성이를 중심으로 포도밭들을 자주 경작했다. 포도를 따서 광주리에 담고, 모은 포도를 다시금 포도즙 틀에 넣어 일꾼들이 함께 모여 포도를 밟는 수확 풍경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모든 추수가 그렇지만 특별히 포도는 정확한 시기를 맞춰 수확하는 것이 중요했다. 포도주는 축제와 기쁨을 위한 술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음료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기에, 포도 수확은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수확의 기쁨과는 달리 작업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포도를 수확한다는 것은 낮에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기로 가득한 바람을 이겨내며 땀을 흘려야 함을 의미했다. 일찍 수확해서 설익어도, 늦게 수확해서 너무 익어버려도 포도주를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또 서늘해지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 모든 작업을 끝내야만 했었기에, 포도 수확량이 많은 경우에는 긴급하게 일꾼들이 필요하기도 했다.
일꾼의 시선, 주인의 시선
비유의 구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첫째 부분은 포도밭 주인의 밭에서 일할 일꾼들의 고용과 낼 품삯에 대한 너그러운 지시가 담겨 있는 부분(마태 20,1-8)이다. 둘째 부분은 임금의 지급에 대한 온종일 일한 이들의 불평과 이에 대한 주인의 응답(20,9-15) 부분이다. 이 비유들은 그 뒷부분에 핵심적 내용이 담겨 있기에 이 비유도 후반부 내용에 중점을 두고 이해해 볼 수 있다.
비유 내용을 살펴보면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 오전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그리고 다섯 시까지도 장터에 나가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과 계약하고, 이들을 포도밭으로 데려온다. 오후 다섯 시까지도 일꾼들을 데려왔다는 것은 이 수확이 매우 다급한 때였음을 설명해 준다.
마침내 해가 져 일이 마무리되고 임금을 지급할 시간에 주인은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차례대로 품삯을 지급한다. 먼저 한 시간 동안 일한 이들에게 하루의 품삯이라 할 수 있는 한 데나리온을 지급하고, 아침부터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일한 이들에게도 똑같이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다. 이에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은 즉시 주인에게 불평을 쏟아낸다.
사실 여기에는 두 가지 불평등이 존재한다. 먼저 마지막에 온 사람들은 한 시간 일한 데 비해서 아침부터 일한 이들은 온종일 일을 했던 것이고, 다섯 시에 온 이들은 저녁 서늘한 때에 일 한 반면에 아침부터 일한 이들은 한낮 불볕더위 속에서 일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비유의 내용을 처음 접할 때면 처음부터 온 이들의 항의와 불평이 당연한 요구처럼 느껴지게 된다.
사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계약대로 품삯을 계산한 것이다. 이는 분명 불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 일꾼들에게만 후했고, 처음부터 일한 이들에게는 일관성이나 형평성을 보여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비유를 이해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비유의 참 묘미가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던 청중들이나 독자들은 이 비유를 들으며 이의를 제기하며 더 관심을 집중하게 되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와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시는 하느님 나라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또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비유에서 볼 수 있는 하느님 자비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예수님 비유의 직접적인 청자는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던 당시의 바리사이들은 수많은 율법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그 규정을 지켜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자신들은 율법 규정을 지켰기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받은 첫째의 사람들이고, 직업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거나 지킬 수 없는 사람들 또 율법규정을 어기는 사람들을 꼴찌로 여겼던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정의와 공정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자비를 강조하시고 계신 것이다.
자신의 공로나 자격 때문에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넘치는 호의와 사랑 안에서 초대받는 하느님 나라! 그 크나큰 사랑과 자비 안에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복음의 묵상이 됐으면 좋겠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3일, 최광희 신부(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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