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비유 (12) 되찾은 양의 비유
양 찾는 목자처럼 자녀 회개 기다리는 하느님
- 양을 어깨에 짊어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로마 인근 성당을 방문한 교황이 어린 양을 목에 두른 모습. [CNS]
되찾은 양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 두 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먼저 루카 복음서의 15장은 되찾은 양의 비유에 이어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까지 세 비유가 연결되어 소개되며 되찾음의 큰 기쁨을, 잃은 것을 다시 찾음에 대한 기쁨을 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마태오 복음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선포 안에서, 지극히 작은 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함과 하느님의 크나큰 용서라는 주제와 함께 비유가 제시되고 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적대자들이라 할 수 있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함께하고 있다면,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는 내용에서는 같은 비유임에도 어조나 분위기, 그리고 강조에서 차이점들을 드러내게 된다. 또 자연히 비유들이 선포될 당시에 이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따르는 이들과 그 메시지와 파격적 행보들에 대해 비난과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객관적으로 살펴본 비유의 배경
비유의 배경을 살펴보자면, 이스라엘은 주로 구릉 지대나 산간 지대를 중심으로 양을 쳤다. 헤브론 산지부터 신 광야에 이르는 지역들은 구릉지와 넓은 계곡들이 펼쳐져 있었기에 양들을 치는 대표적인 장소들이었고, 목자들은 아침부터 목초지를 찾아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양 떼들을 돌보았다. 양 떼 규모는 20~200마리 정도가 일반적이었기에 비유의 100마리 정도의 양은 보통 규모의 양 떼를 의미했다. 이는 양 떼의 주인이 부자가 아니며 직접 자신의 양 떼를 돌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목자는 일반적으로 하루종일 양을 치다가 저녁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갔고,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외부에서 양을 칠 때면, 비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동굴이나 골짜기 같은 곳에서 밤을 지내곤 하였다.
비유의 목자는 다른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위험에 버려둔 채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다.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잃어버린 양을 특별히 아꼈던 것인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목동들은 하루에 한 번, 해가 저문 저녁 때에 양 떼의 숫자를 세었다. 양 떼를 몰고 우리로 돌아올 때나 비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피신처에 도착해서 양의 숫자를 세었다는 의미이다. 즉, 아흔아홉 마리라는 숫자는 이미 셈이 진행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떠났다는 것이 이미 다른 목자에게 양들을 맡기고 나서거나, 우리나 광야의 동굴에 양 떼를 넣어놓고 나서리라고 생각하게 해준다.
목자는 자신이 잃은 양이 어떤 양인지를 알고 양을 찾으러 나섰을 것이다. 요한 복음서의 말씀(요한 10,3-4)처럼 당대의 관습상 목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이름을 붙여 주고, 각각의 양을 다 알아볼 수 있었기에, 또 양들 역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었기에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목자는 모든 양이 자신의 양이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로 양들을 지켜왔을 것이고, 양들도 이러한 목자임을 알기에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양은 어떤 상태였을까? 일반적으로 양의 시야는 퇴화해서 10m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무리에서 이탈한 양은 발을 헛디뎌 다치거나 벼랑에 떨어져 죽는 일도 종종 발생했고, 야생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면 길을 잃은 양은 두려움에 떨며 길을 헤매게 되고 목자를 애타게 찾아 울며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그래서 목자가 무리에서 이탈한 양을 발견했을 때쯤에는 스스로 더는 걸을 수 없는 상태일 경우가 더 많았다. 목자는 자연히 되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양을 되찾은 목자의 기쁨! 이는 어떠한 기쁨이었을까? 애타게 찾아 헤매던 자신의 양을 되찾은 목자의 기쁨을, 비유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함께 기뻐할 축제의 장면으로 전해준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를 원하심을, 즉 회개를 통한 죄인의 구원을 원하심을 설명해 준다. 끊임없이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처럼 애타게 회개로 초대하며, 양 무리에 있다가 잠시 길을 잃을지라도 그 어느 양이라도, 그 누구도 잃지 않으려 하심을 전해 준다.
구원의 기쁨과 용서의 기쁨!
회개하는 죄인 한 명보다 의인 한 명에 하느님께서는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 일반적인 당대 지도자들의 믿음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지 않으려 하는 목자의 마음과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는 하늘나라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하느님 용서의 기쁨과 더불어 왜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받아들이시는지를 설명하시고 계신 것이다.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는(시편 23,2-3) 착한 목자 예수님 안에서, 우리 역시도 그 기쁨에 동참하도록 초대받고 있음을 되새기며, 당신의 양 떼로 항상 머물러 있기를 청하여 본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10일, 최광희 신부(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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