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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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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26 조회수3,439 추천수1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예루살렘



1. 그때 그 자리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에블라에서 발굴된 기원전 1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토판 조각으로, 하초르, 므기또 등과 함께 언급된 걸 보면 오래된 성읍임을 알 수 있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인 마소라본에는 ‘예루샬라임 ???????????’?으로 읽히며, ‘예루살렘’은 아람어 발음에 해당한다. 시온 또는 아리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고, 기원 후 2세기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서는 ‘엘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유다인의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역사를 거듭하던 예루살렘 성전에 지금은 이슬람의 황금 돔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예루살렘이지만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기간을 제외하면 사실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던 역사를 안고 있기도 하다.


2. 하느님의 현존과 약속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는 것은 다윗이 통일왕국의 임금이 되어 수도로 삼은 다음부터다.(2사무 5,5) 예루살렘은 원래 여부스족의 도시로 견고한 방어시설을 갖추었으나, 다윗은 성밖의 기혼샘과 연결된 지하수로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 수로를 통해 성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6-9절) 다윗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으로써 신정체제를 갖춘 중앙집권화 된 왕국을 이루어낸다.

그 뒤를 이은 솔로몬은 7년에 걸쳐 성전 건설을 완성하고, 계약 궤를 옮기는 봉헌식을 올리는 가운데 길고 장엄한 기도를 드린다.(1열왕 6-8장) 그의 청원과 백성에게 주는 권고는 “주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처럼, 우리와도 함께 계셔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기를 빕니다.”(1열왕 8,57)라는 구절로 모아진다.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백성, 그분의 현존이 바로 이 도성이 ‘평화의 도시’로 보존되는 비결인 것이다.

다윗가문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느님 현존의 약속은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후에도, 유배를 겪은 후에도 남은 백성의 어두운 현실을 밝혀주는 희망의 불꽃이었다. “한 지파는 그의 아들에게 주겠다. 그리하여 나의 종 다윗에게 준 등불이 내 앞에서, 내 이름을 두려고 뽑은 도성 예루살렘에서 언제나 타오르게 하겠다.”(1열왕 11,36)


3. 되찾은 예루살렘의 등불

유다왕국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된 일은 ‘다윗가문의 등불’ 이 꺼진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돌아온 이들은 하느님의 약속에 희망을 건 이들이었다. 비록 이전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재건된 성전에 세워진 제우스 신상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저항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 예루살렘과 결합된 민족의 사활 문제이기도 했다. 꺼지려는 등불을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되고자 목숨을 바친 이들을 통해 마침내 성전이 회복된다.(2마카 10장)

마카베오와 그의 군사들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 성전과 도성을 탈환하고, 이민족들이 광장에 만들어 놓은 제단들과 성역들을 헐어버렸다. … 그들은 여드레 동안 그 축제를 초막절과 같은 방식으로 기쁘게 지냈다. 그러면서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자기들이 이 초막 축제 동안 산과 동굴에서 들짐승처럼 살던 일을 기억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 당신의 거처를 정화하도록 잘 이끌어 주신 그분께 찬미가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온 유다 민족이 해마다 같은 날에 축제를 지내기로 공적인 결의에 따라 정한 법령을 공포하였다.(2마카 10,1-8 발췌)

성전정화 기념축제인 하누카(‘봉헌’이라는 뜻)는 지금도 이어진다. 8일 동안 초를 하나씩 밝히면서 잃었던 빛을 되찾은 데 대한 감사의 찬미와, 다시 그러한 일을 겪지 않도록 기원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들짐승처럼 살던 일을 기억’하는 일 또한 포함된다. 왜 이러한 환난을 겪게 되었는지를 묻고 거기서 배워야 할 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런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축제일을 법으로 정했다는 사실은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성전봉헌 축일의 의미를 제대로 살아갔더라면 예루살렘의 등불은 오래도록 타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항쟁을 주도했던 이들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사제직과 왕직을 겸하면서 점차 세습왕조로 나아가고, 세력다툼은 내부를 분열시키며 외세의 개입을 불러온다. 결국 기원전 63년 제한적이긴 했지만 그동안 누리던 유다의 자주권은 사라진다.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4. 우리 민족의 하누카, 광복절

상실의 회복을 기뻐하는 일은 단순한 축제로 끝날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 축제다. 하느님의 약속을 간직한 예루살렘과 화려하게 건설된 성전은 여러 차례 파괴를 거치며 돌무더기만 남는다. 기억하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튼튼한 도성의 벽들이 다 무너져 내려 서쪽 한 귀퉁이만 ‘눈물자국’으로 남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노라면, 이를 내다보며 탄식하신 예수님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마태 23,37-38)

8월 한가운데에 우리 민족이 주권을 회복한 큰 기쁨을 기억하는 날이 있다. ‘빛을 되찾은 날, 빛이 다시 돌아온 날’을 뜻하는 광복절(光復節)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빛은 아직도 반쪽이 된 등잔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다.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쳐 더 뜻깊은 이 날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날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어떻게 우리가 어둠 속에 떨어지게 되었는지 지난 역사에서 배우며, 빛을 회복하는 일에 목숨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만 한다.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여 주님께 봉헌하고 하나 되었던 이들이 갈라져 나간 그 길을 뒤따라가지 않기 위해서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오래도록 타오르는 평화의 빛을 지니기 위해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주는 듯하다.

[야곱의 우물, 2014년 8월호, 송미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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