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비유 (15) 혼인 잔치의 비유
잔치에 초대됐는데, 이게 웬 날벼락?
- 잔치에 초대된 종들을 붙잡으라고 명령하는 왕의 모습. 그림은 ‘혼인 잔치의 비유’. 카스파 루이켄 작.
혼인 잔치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에서 나란히 전해지며 그 구조와 내용에서 많은 동일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형식과 세부적인 사항들에서는 매우 다르며, 사용되는 단어들도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왕의 진노
루카 복음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초대하라는 권고에 그 초점이 있다. 종이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온 이후에도 주인은 더 많은 손님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대의 일상적인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특별한 날의 초대에 응하는 것은 일반적인 예의였다. 루카는 이 예외적인 상황을 강조하며 이를 세 번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3단계 구성의 강조 용법은 사실 마르코(예: 세 번에 걸친 수난 예고, 베드로의 세 차례 배반, 예수님의 세 가지 유혹, 세 가지 씨앗의 비유 등)가 즐겨 쓰는 강조 용법이기도 하다.
마태오와 루카 두 복음서 모두 왕의 진노를 전한다. 사실 잔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를 불태우고 끝장낸다는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장면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임금의 분노에 대한 묘사이다. 잔치에 초대한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는 초대된 이들의 반응도 당혹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준비된 혼인 잔치가 베풀어지기도 전에 자신의 군대를 파견하여 살인자들을 죽음에 처하게 하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리게 하는 주인의 모습은 더 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불태웠던 서기 70년도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였을 것이다. 또한 살인자들의 도시에 대한 임금의 복수는 많은 근동 설화들에 자주 등장하고 있었기에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비유의 내용이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비유의 맺음 부분(22,11-13)으로 이는 실로 주석가들에게도 오랫동안 어려움을 안겨주었던 부분이다. 길에서 전혀 준비도 없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아 온 사람이 혼인 예복을 입을 수 있는가? 또 설사 결혼식 예복을 입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질 만큼 큰 잘못인가? 물론, 창세기 45장 2절의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예복을 한 벌씩 주는 모습이나 판관기 14장 1절의 삼손이 혼인잔치의 예복에 관해 내기를 하는 모습 안에서 혼인잔치에 예복이 선사되는 모습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전통이 예수님 당시에도 지속되고 있는지는 증명하기 어렵다.
하느님 초대에 대한 응답
마태오 복음서에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강하게 우의화(알레고리화) 되어 있다. 여기서 이 혼인 예복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잠시 살펴보면, 이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이며, 의로움을 행함(3,15:5,20)이 된다. 또한, 사랑의 계명을 행함(22,34-40)이요 자비를 행함(25,31-46)이 된다.
“사실 초대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습니다.”
이 초대는 단지 도시 안에 있는 이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큰길과 울타리 밖까지 즉, 성밖에 있는 이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즉, 도시 내의 사람 중에서 소외된 이들이었던 이스라엘의 세리와 죄인들을 포함하여 성밖의 사람들 곧, 이방인들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열린 초대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초대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구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교회는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세례는 “악한 자들이나 선한 자들이나” 모두에게 열려 있는 초대이나, 단순히 세례를 받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선택된 이들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초대에의 응답은 매일 매일 일상의 생활 안에서 새롭게 체험되고 또 성장하여야 할 부분이었기에 마태오 복음서는 선택된 이들의 표징인 예복 즉,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고 계신 바일 것이고, 바로 우리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 신앙의 쇄신과 당신 안에 머무름이 그 응답으로 요구되는 바일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8월 31일, 최광희 신부(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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