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33) 십자가의 길 - 3
⑤ 제5처
십자가의 길 제4처에서 20m 가량 내려가다가 첫 번째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골고타를 향하는 오르막 길을 만나는데, 왼쪽에 제5처가 있다. 이곳에서는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진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마르 15,21) 이곳에는 1895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경당이 세워졌다.
⑥ 제6처
제5처에서 약 50m 가량 가면 왼쪽에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하는 제6처가 있다. 이곳에는 1882년에 세워진 동방 가톨릭인 멜키트의 경당이 있다.
⑦ 제7처
제6처에서 오르막 길을 계속 가면 다마스쿠스의 문(Damascus Gate)으로 통하는 다른 길을 만나는데, 정면에 예수님이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하는 제7처가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작은 경당이 있는데, 내부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당시 건설된 도시의 로마 기둥이 있다.
⑧ 제8처
제7처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약 30m 오르막 길을 가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신 것을 기억하는 제8처를 만난다.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루카 23,27-29) 이곳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있다.
⑨ 제9처
제8처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 가서 오른쪽 길로 들어선 후 계단을 오르면 콥트 교회의 수도원을 만나는데 그 출입문 기둥에 제9처가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세 번째 넘어지신 것을 묵상한다.
⑩ 제10처
이상에서 살펴본 십자가의 길 제1처-제9처는 골고타를 향한 여정이고, 제10처-제14처는 “주님 무덤 성당(the Holy Sepulchre)” 안에 있다. 성당의 정문에 들어서서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바로 골고타이다. 이곳에는 두 개의 경당이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경당이고 왼쪽의 경당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이다. 이 두 경당의 모습과 여러 장식들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차이를 잘 드러낸다. 가톨릭교회 소속의 경당에는 십자가의 길 제10, 11처가 있고 그리스 정교회의 경당에는 제12처가 있다.
제10처는 예수님이 옷 벗김 당하신 것을 묵상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해골 터’라는 뜻이다.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마르 15,22-24)
⑪ 제11처
제11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그분의 죄명 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마르 15,25-27)
⑫ 제12처
제12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한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28-30)
⑬ 제13처
“주님 무덤 성당”의 골고타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예수님의 시신을 염하던 받침대 돌판이 있다. 이곳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하는 제13처이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 19,38-40) 마르 15,46-47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⑭ 제14처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끝난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1-6)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4년 9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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