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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룻과 나오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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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3 조회수3,967 추천수1

[성경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룻과 나오미의 사랑



룻기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룻기 첫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마흘론과 킬욘이었는데....”(룻 1,1-2) 고향 베들레헴에 가뭄이 심해 견디다 못해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타향 땅을 찾아 나섭니다. 그곳이 사해 맞은쪽에 자리 잡은 모압 땅이었습니다. 룻기는 이와 같이 요르단 강을 건너 모압으로 향하는 나오미 가정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서 행복했습니까?


다음 구절이 답을 줍니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얼마 후 그곳에서 두 아들을 혼인시킵니다.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룻 1,4) 그들과 행복하게 살고자 했으나 두 아들마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차례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룻 1,5ㄴ)


나오미가 보는 자신의 운명은?


나오미는 스스로를 불행한 여인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향 주민들에게 그는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셔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너무나 쓰라리게 하신 까닭이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답니다.... 주님께서 나를 거칠게 다루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불행을 안겨 주셨답니다.”(룻1,20-21)


룻기 전체의 흐름은?


맨 앞부분은 가슴 아픈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지만(1,1-5) 곧이어 분위기가 크게 바뀝니다. 룻기는 시작부분만 제외하면 줄곧 평화롭고도 사랑이 넘쳐흐릅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전개되는 이삭줍기는 목가적이며 전원적이어서 옛날 우리네 가을걷이, 곧 한국의 논밭 이삭줍기를 떠올리게 해줍니다. 특히 작은 며느리 룻과 시어머니 나오미 사이에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는 아름답고도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면서 불행해졌다면, 고향으로 돌아와서부터는 행복해졌습니다.


룻기가 역사서입니까?


예, 칠십인역 전통에 따라 가톨릭에서는 판관기와 사무엘기 사이에 넣어 역사서로 분류합니다. 룻기가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1,1)로 시작되기 때문에 판관기 바로 뒤에 배치해 놓고, 자연스레 판관기와 더불어 역사서로 분류한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말 성서에서는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사실 룻기는 본연의 역사적 내용은 다루지 않습니다.


룻기가 축제오경에 속합니까?


룻기는 아가서-코헬렛-애가-에스테르기와 더불어 유다인들의 축제 두루마리(축제오경)에 속합니다. 기원 이후의 유다인들은 주요 축제 때 축제오경을 봉독하기 시작합니다. 룻기는 주간절(오순절이나 수확절: 레위 23,15-21 신명 16,9-11; 사도 2,1)에 봉독했습니다. 룻기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보리 수확 시기로부터 펼쳐지기 때문입니다(룻 2,2).


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까?


다음이 답을 줍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과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가기로 하였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베푸셨다는 소식을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룻 1,6)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자, 각자 제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남편들과 나에게 해 준 것처럼 주님께서 너희에게 자애를 베푸시기를 빈다.”(룻 1,8.9-15)


나오미의 작별인사는?


본디 나오미는 큰며느리 작은며느리 할 것 없이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시집 식구들과는 민족도 종교도 다르니, 새로 혼인하여 행복하게 살라고 복을 빌어주며 작별인사를 합니다. 두 며느리는 하나같이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겠다고 합니다. “저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돌아가렵니다.”(룻 1,10) 큰며느리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입 맞춥니다. 그러나 작은며느리 룻은 막무가내로 나오미에게 달라붙어 따라나섭니다. 나오미는 간곡히 만류합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룻 1,15) 그러자 룻은 자신의 사랑과 효심을 고백합니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1,16-17)

이보다 더 짙은 애정과 효심 선언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최고의 애정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은?


시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정과 효심 덕분에 룻은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룻 1,22ㄴ). 부지런한 룻은 우연찮게 베들레헴 지방의 제일 유지인 보아즈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됩니다. 보아즈는 첫눈에 룻에게 반합니다. 그는 수확 감독관에게 묻습니다. “저 젊은 여자는 뉘 댁인가?”(룻 2,5ㄴ) 보아즈 마음은 그의 명령에서 선명히 드러납니다. “저 여자가 보릿단 사이에서 이삭을 주워도 좋다. 그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마라. 아예 보리 다발에서 이삭을 빼내어 그 여자가 줍도록 흘려주어라. 그리고 그를 야단치지 마라.”(룻 2,15-16)


보아즈와 룻은?


결국 보아즈는 룻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렇게 보아즈가 룻을 맞이하여 룻은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가 룻과 한자리에 드니, 주님께서 점지해주시어 룻이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룻 4,13.17ㄴ) 이렇게 하여 모압 출신 룻은 유다민족 최고의 임금으로 꼽히는 거룩한 임금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종족 보존이 매우 중요했던 당시, 가장이 후손 없이 죽으면 구원자가 그 부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그에게 후손을 낳아주어야 했습니다(룻 3,12). 희년 규정에 따르면, 자기 “형제가 가난해져 자기 소유지를 팔 경우, 그에게 가장 가까운 구원자가 나서서 그 판 것을 되사야 한다....”(레위 25,25) 룻기에서는 (친족의) 구원자가 고인의 부인과 혼인할 의무뿐 아니라 고인이 소유해오던 토지까지도 사들여야 할 의무까지 함께 등장합니다(룻 3,12; 4,5 참조). 보아즈는 본디 제일 구원자가 아니었지만 그가 자신의 의무를 포기하는 바람에 구원자가 됩니다(룻 4,1-6 참조).


하느님 섭리?


룻기의 메시지는 하느님 섭리를 밝혀주는 다음 구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웃 아낙네들은 그 아기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하고 말하였다. 그의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다.”(룻 4,17) 룻기에서 저자는 룻이 다른 나라 출신임을 여러 차례 밝힙니다. ‘모압 여자, 모압 출신 며느리, 모압 출신 젊은 여자, 이방인, 마흘론의 아내인 모압 여자 룻’(룻 1,4.22; 2,2.6.10.21; 4,5.10). 룻 자신도 그 점을 명백히 밝힙니다. “저는 이방인인데,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어찌 된 영문입니까?”(룻 2,10)


룻기가 주는 교훈은?


룻기 안에서는 민족 간의 갈등도 종교 간의 갈등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두가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저 호의와 상호 존경심을 가지고 만나고 나누어 하나가 됩니다. 룻기에서는 외국여인과의 혼인금지 규정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에즈 9-10; 느헤 13장 참조). 룻기 안에는 남을 비난하는 표현은 물론 논쟁적 언사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미와 룻 사이에는 대단한 인내심이나 높은 덕망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상호 존경과 사랑 속에 싹튼 깊은 애정과 신의가 돋보입니다. 고부간의 그러한 사랑의 고리가 보아즈를 만나게 해주었으며, ‘너무나도 쓰라리던’ 마음에(룻 1,13.20) ‘생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룻 4,15). 또한 남편과 자식을 잃고 빈손으로 돌아온 불행한 여인에게(1,21) ‘아기를 받아 품에 안는’ 행복을 선사해주었습니다(룻 4,16).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사는 누구에게나 가슴을 파고드는 나오미와 룻 이야기는 오늘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게 해주며 용기와 힘을 줍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룻’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7월호, 
신교선 가브리엘(신부, 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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