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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다윗은 왜 훌륭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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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3 조회수2,637 추천수1

[성경에서 걸어나오는 사람] 다윗은 왜 훌륭합니까?



한나의 슬픔은?


엘카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프닌나는 아이들을 낳았지만 한나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아이가 없는 한나는 자주 우울해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엘카나가 말합니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이는 슬픔에 젖어있는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 아닐까요? 한나는 남편의 위로를 받으며 힘을 내어 그때부터 밤잠을 편히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나의 근본적 희망은?


엘카나의 위로가 남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지만, 그렇다고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젊은 여인으로서 또 한 남편의 아내로서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늘 허전한 마음을, 한나의 근본적 희망을 그 누구도 다 채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한나의 다음 선택은?


한나는 주님께 간청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사제 엘리가 머무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앉아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사무 1,11)


한나의 간절한 기도는?


한나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제 엘리는 그만 그녀를 술 취한 여인으로 착각하고 맙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1,14) 한나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1,16) 그와 같이 간절하고도 끈질긴 기도는 결국 응답을 얻게 됩니다.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1,17)


한나의 노래는?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은총으로 사무엘을 낳은 한나는 다음과 같이 주님께 찬미기도를 노래합니다. “제 마음이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제 이마가 주님 안에서 높이 들립니다. 제 입이 원수들을 비웃으니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이 없습니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하느님 같은 반석은 없습니다...”(2,1-10) 이 찬미가(=한나의 노래)는 훗날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에 깊은 영감을 주어 마리아의 노래의 기초가 됩니다.


사무엘기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은?


사무엘기 상하권의 중심부에는 다윗 임금이야기가 펼쳐져 있습니다(1사무 16,1-2사무 5,25; 8,18). 사울 임금이 아말렉족과의 전투에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전리품을 가져오는데 더 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주 하느님께서 사울을 버리셨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다윗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울 임금이 왜 버림받았는지요?


사무엘이 사울 임금에게 말하는 다음 내용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1사무 15,18-19)


주님께서 사울을 폐위하시고 다윗을 임금으로 정하시는 장면은?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두었다.”(1사무 16,1)


사무엘은 누구를 뽑습니까?


사무엘은 다윗의 아버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합니다(1사무 16,5) 겉보기에 늘씬하고 멋진 아들을 보자마자 사무엘은 바로 저 아이를 주님께서 뽑아 세우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십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16,7)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그저 눈에 들어오는 겉모습만 볼 뿐, 그 속은 들여다보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요? 날이 갈수록 겉모양에 치중하는 우리네 모습이 사뭇 걱정스럽게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6,7ㅁ) 이사이는 연거푸 아들을 사무엘 앞에 내 세웁니다.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 이렇게 일곱 번째 아들까지 내세웠지만 사무엘은 말합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16,11)


주님께서 누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십니까?


이사이가 막내 다윗을 데려오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16,12)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때부터 줄곧 다윗에게 머무릅니다.


다윗과 요나탄의 우정은?


신명기 역사가는 다윗에 대한 요나탄의 뜨거운 우정을 요약해서 전해줍니다.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여 그와 계약을 맺었다. 요나탄은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고, 군복과 심지어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도 주었다.”(1사무 18,3-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제1 후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의 눈으로 다윗을 바라보고 이미 다윗 안에서 작용하시는 하느님 손길을, 하느님의 영을 감지합니다.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 사울 임금의 음모를 번번이 빗나가게 하여 다윗을 살려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시대에도 곳곳에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탐내는 이들이 수없이 많지만 요나탄처럼 둘째가 되려는 이들이 아쉽고 필요한 때입니다. 자신과 경쟁자나 적수가 될 수도 있는 다윗을 없애버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있는 힘과 지혜를 다 짜내서 다윗 안에서 작용하시는 영원하신 분의 영을 감지하고 끝까지 우정을 간직하며 또 키워가는 아름다운 마음의 요나탄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두면 어떻겠습니까? 요나탄 없이 다윗은 살아남기 어려웠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사무엘기 상권 20장을 볼 적마다 요나탄의 그토록 따뜻하면서도 갸륵한 우정과 사랑에 감동을 받지 않는 분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다윗의 어떤 점이 훌륭합니까?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뒤쫓을 때에도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합니다(1사무 18,14). 다윗을 쫓는 사울 임금은 다윗에게 매번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됩니다. 다윗 일행이 사해 부근 엔 게디 광야 어느 동굴에 들어가 뒤를 보는 사울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만을 몰래 잘라내고는 그것까지도 마음에 부담을 느낍니다. 그러고 나서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은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1사무 24,6-8)

비슷한 경우가 또 생깁니다. 쫓겨 다니던 다윗은 어느 날 밤중에 아비사이와 함께 하킬라 언덕 부근에 진을 친 사울 진영으로 내려갑니다. “그때 사울은 진지 안에서 머리맡 땅바닥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었다. 아비네르와 그의 군사들도 사울을 둘러싸고 잠들어 있었다.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비사이를 타일렀다.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다윗은 다시 말을 이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주님께서 그분을 치실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자기 때가 되어서 돌아가시거나 싸움터에 내려가 사라지실 것이다.’”(1사무 26,7ㄴ-10)

아무런 혐의도 없는 자신을 없애버리려 대드는 사울을 번번이 용서해주는 다윗 모습입니다. 거듭 용서를 베푸는 가운데 다윗은 사울의 구원자가 된 셈 아닙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8월호,
신교선 가브리엘(신부, 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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