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헬레니즘 시대의 신앙
마카베오기 상권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율법을 바로 지키는 데 관심을 둡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할 때 그분이 내리시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계약의 백성으로 충실히 사는 유일한 길이 바로 율법에 충실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카베오기 상권에 등장하는 신앙인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교도들의 풍습을 거부하고 그분의 율법을 따랐던 것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마카베오기 상권의 연속작품이 아닙니다. 상권과 하권의 저자가 다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은 안티오코스 4세가 등극하기 얼마 전부터 시작하여 유다 마카베오의 죽음 전까지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마카베오기 상권에서는 유다 마카베오가 등장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 보다 상세히 언급됩니다.
‘하스몬 왕조’란 이름의 유래는?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유다 마카베오가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합니다. “마카베오와 그의 군사들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 성전과 도성을 탈환하고, 이민족들이 광장에 만들어 놓은 제단들과 성역들을 헐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성전을 정화하고 다른 제단을 쌓은 다음, 부싯돌로 불을 피워 그 불로 이태 만에 희생제물을 바쳤으며, 향을 피우고 등불을 켜고 제사 빵을 차려놓았다.”(2마카 10,1-3)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는 예루살렘 성전정화에서 제단 봉헌을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하권의 저자는 성전 정화예식에 강조점을 둡니다(참조: 10,4-8).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성전 정화의 주인공 유다 마카베오를 돋보이게 하고자 그의 아버지 마타티아스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마타티아스라는 말은 본디 ‘주님의 선물’을 뜻하는 히브리어 ‘마티트야’를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입니다. 훗날 유다 역사학자 요세푸스가 마타티아스를 하스모네오스라고 불렀습니다. ‘하스몬 왕조’의 이름은 요세푸스가 처음으로 부른 ‘하스모네오스’에서 유래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는 무엇을 요구합니까?
그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를 때, 당시에 이미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 에세네파 등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상권의 저자는 지나치게 열광주의로 흐르는 경향의 집단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서 전통적 계약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과 하권 전체를 관통하는 큰 흐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다민족에게 그리스 문화를 억지로 뿌리내리게 하려는 셀레우코스 왕조에 맞서는 저항운동입니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화 운동을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합니다. 마카베오기 상하권의 내용은 선민 이스라엘에 강제로 그리스식 이방문화를 주입하려는 세력에 항거하는데서 오는 고난과 박해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들 두 권은 한마디로 그리스 문화화 운동에 대한 유다인들의 조직적 저항운동과 그에 따른 갖가지 박해상황을 섬세히 기록한 책들입니다. 그리스 제국의 패권정책이 유다인들에게 이교제사를 강요했습니다. 이를 거부하고 율법에 충실하려는 유다인들의 투쟁이 돋보입니다. 특히 상권에서는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들의 신앙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습니까?
7월호에서 본대로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국론이 분열되어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는 ‘변절자들’의 실태를 고발합니다. “그 무렵에 이스라엘에서 변절자들이 생겨 많은 이들을 이러한 말로 꾀었다. ‘자, 가서 우리 주변의 민족들과 계약을 맺읍시다. 그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동안에 우리는 재난만 숱하게 당했을 뿐이오.’”(1,11) “사악한 자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군대도 시리아의 장수 세론을 도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수하려고, 그와 합세하여 올라왔다.”(3,15) “이스라엘에서 무도한 자들과 사악한 자들이 모두 그에게로 갔는데, 대사제직을 탐내는 알키모스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7,5) 여기 등장하는 유다인 알키모스는 그리스인들 편으로 넘어감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반역자가 됩니다. 그는 본래 히브리어로 ‘야킴’ 또는 ‘엘야킴’이라는 이름을 지녔었는데 변절하여 그리스드식 이름 ‘알키모스’로 불리게 됩니다.
유다 민족은 왜 그러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까?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대답합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이러한 고난에 좌절하지 말고, 이 징벌을 우리 민족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시키려는 것으로 여기도록 권고한다...... 그분께서는 절대로 우리에게서 자비를 거두지 않으신다. 고난으로 당신의 백성을 교육하시는 것이지 저버리시는 것이 아니다.”(2마카 6,12.16-17; 참조: 7,17.32) 지금 유다민족이 겪는 고난은 하느님의 심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유다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께서 내려주신 은총의 기회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의 주요 신학 몇 가지만 살펴본다면?
먼저 창조사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無)’에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반해 마카베오기 하권의 저자는 하느님께서 우주만물을 모두 ‘무에서부터’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않으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2마카 7,28)
마카베오기 하권 안에 ‘의인들의 부활’ 사상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본디 구약에서는 부활사상이 뚜렷이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 후기 문헌에 속하는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명시적으로 부활사상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입니다.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6,26) “......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7,9; 참조 7,16-19)
단 하루 만에 일곱 아들이 차례로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이르는 어머니의 말입니다. “......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7,22-23)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줄 수 있는지요?
개신교에서는 죽은 자들의 운명은 오직 하느님 손에 달려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방교회와 가톨릭교회 역사에서 성인들의 중개기도가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이를 위해서 뿐 아니라 죽은 이들이 산 이들을 위하여 중개기도를 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참조: 2마카 15,12-16)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12,44-45)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9월호, 신교선 가브리엘(신부, 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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