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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의 비유17: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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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8 조회수4,593 추천수1

신약의 비유 (17) 열 처녀의 비유(마태 25,1-13)


기름도 준비 못 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준비 없이 시간을 보내는 다섯 명의 처녀와 등에 기름을 채운 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신랑 맞을 준비를 하는 다섯 처녀. 열 처녀의 비유(1616년, 히에로니무스 프랑켄 2세).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잔치 혹은 혼인잔치에 빗대어 설명하시거나 보여주시는 내용을 복음서에 종종 볼 수 있다. 이 혼인잔치라는 표상은 평생에 한 번 맞이하는 잔치, 잔치 중에 가장 크고 풍요로운 잔치로서, 성경에서는 풍족한 양식, 물질적인 풍요로움뿐 아니라 친교의 충만함을 상징하고 있다.


준비 안 된 어리석은 처녀들

이 비유에 나오는 열 처녀는 혼인잔치를 위해 신랑을 마중하는,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신부의 들러리들이기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의 결혼은 전통적으로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는 결혼 계약 혹은 결혼 약속인데, 결혼할 당사자들의 부모들이 오랜 전통에 따라 결혼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서로 동의함으로써 결혼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약혼 이상의 것으로 계약 순간부터 법적인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둘째 단계는 이 비유와 직접 연관되는 단계로서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결혼 축제 행렬이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신부와 신부의 동료들이 행렬하는가 하면, 신랑과 동료들의 행렬에 관한 기사도 있다. 뒤를 이어 결혼식이 거행되는데, 혼인잔치의 비유(마태 22,1-14)와 큰 잔치의 비유(루카 14,16-24)에서 볼 수 있듯이 결혼식은 보통 신랑 부모의 집에서 거행됐다. 결혼식 후에 부부는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관습에 의하면 결혼하는 신부의 나이는 12살에서 13살, 신랑은 18살 정도로 어리다. 결혼식 뒤에는 혼인잔치가 이어지는데 관습적으로 7일간 지속했다.

이 비유의 배경이 된 곳이 신랑 부모의 집인지 신부 부모의 집인지 논란이 되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처녀들은 신랑이 결혼식과 결혼잔치를 위해 집 근처까지 오면 마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열 명의 처녀들은 모두 기름 등잔을 가지고 있었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을 그릇에 따로 담아 준비했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기름 등잔 안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따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랑이 늦어져서 처녀들은 모두 잠이 든다. 한밤중에 신랑이 도착하고 처녀들은 등을 챙기는데, 그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의 등불이 꺼져가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다오” 하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현명한 처녀들의 대답은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 거절이다. 처녀들은 자신들의 기름을 나누어주면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고 한다. 결혼식에 같이 들러리를 서러 온 동료들에게 냉정히 거절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한밤중에 나가서 가게에서 기름을 사라는 것도 예상치 못한 말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즐겨 사용하시던 파격으로서 청중을 놀라게 하면서 주의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어쨌든 미련한 처녀들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봐서는 기름을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한 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고 처녀들은 입장을 거부당한다. 처녀들이 “주인님, 주인님” 하고 외치는 것은 마태 7,21-23의 내용과 매우 닮아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선행과 의로움으로 심판을 준비해야

이 비유는 표상들과 그 표상의 의미들 사이에 비교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비유의 우화적 요소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신랑은 세상의 심판자로 오실 예수님이고, 그 신랑의 도착이 지체되는 것은 종말의 지연(신랑이 갑자기 오는 것은 갑작스러운 재림의 도래), 열 처녀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 기름은 선행이고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한 거부는 마지막 심판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그 날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원래의 비유에 마태오 복음사가가 재림의 지연과 그에 따른 그리스도교인의 자세와 관련하여 주님의 오심을 깨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요소들을 첨가했다고 본다.

현재 마태오 복음서의 문맥 안에서 이 비유의 메시지를 정리해 보자. 우선 누구도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없다(24,36-44 깨어 있어라). 그렇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말고 충실히 완수해야 한다(24,45-51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현명해야 하고, 인자의 오심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25,1-13 열 처녀의 비유). 이런 기다림 속에서 각자는 오실 주님께 더욱 봉사해야 한다(25,14-30 탈렌트의 비유). 인자는 다시 오실 때, 심판하실 것인데, 심판의 기준은 세상의 선행과 의로움이라는 것이다(25,31-46 최후 심판의 비유).

이 비유는 독자들에게 근본적으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하나는 경고로서의 기능이다. 우리는 모두 현명해야 하고 긴 기다림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위로와 약속의 기능이다. 이 비유의 특별히 아름다운 점은 신랑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보증해 주는 것과 신랑이 오면 자신에게 속한 모든 이들을 모아 함께 잔치에 들어가리라는 사실이다.

[평화신문, 2014년 9월 28일, 이성근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월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4시에 평화방송 TV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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