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이야기] (32) 회당 (상)
유배 시절 성전 대신 생겨난 공공장소
- 회당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유배 시절 부정한 이방인의 땅에서 하느님께 경신례를 드릴 수 없어 생겨났다. 사진은 카파르나움 회당 터
예수님과 사도들은 유다인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때 주로 ‘회당’에서 하셨다. 회당은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던 기도의 집일 뿐 아니라 주민의 물질적 생활을 감독하고, 지방 재판관을 임명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던 유다인 사회의 중요한 공공장소였다.
회당은 기원전 6세기 유다인의 바빌론 유배 시절에 성전의 역할을 대신해 생겨났다는 것이 통설이다. 유다인들은 3차례에 걸쳐 바빌론으로 유배됐다. 기원전 597년 신바빌로니아왕국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에제키엘 예언자를 비롯한 유다인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켰다.
이후 이집트군의 개입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팔레스티나의 몇몇 도시가 바빌로니아에 항거해 독립 반란을 일으켰으나 패하고 말았다. 바빌로니아 군은 기원전 587년 18개월간 항거하던 예루살렘을 함락한 후 성전을 파괴하고 사제와 관리, 귀족들을 처형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들을 바빌론으로 다시 강제이주시켰다. 이것이 제2차 바빌론 유배이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신바빌로니아왕국은 점령지인 팔레스티나 지역에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게 땅을 나눠줬다(2열왕 25,12; 예레 39,10). 또 유다인을 다스릴 총독으로 그달야를 임명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달야는 매국노로 간주돼 이스마엘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자 기원전 582년 신바빌로니아왕국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반란자들을 처단하고 유다인들을 다시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켰다(예레 52,30).
이방인의 땅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다인들은 당장 부정한 곳에서 어떻게 하느님께 희생 제사를 드릴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민족들 사이로 쫓아 버리고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지만,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얼마간 그들에게 성전이 되어 주겠다”(에제 11,16)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경신례를 바칠 ‘민가’(예레 39,8)를 정했다.
그리고 예언자들과 랍비들은 이 시기부터 ‘기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일부 랍비들은 성전이 없는 곳에서도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가 모든 희생 제사보다 더 중요하다”(「탄후마 레위」)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기원전 538년 키루스 칙령을 통해 바빌론에서 유배 중이던 유다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시켰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제단을 다시 세우고 희생 제사를 바쳤다.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을 빨리 재건할 것을 유다인들에게 독촉했고, 기원전 446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복구를 마무리하고 종교ㆍ사회 개혁을 단행했다(느헤 1-6장 참조).
유다인들이 고향으로 귀환했음에도 회당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수가 늘었다. 마을마다 회당이 있었고 도시에는 여러 개가 있었다. 유다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집을 회당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 서기 1세기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69~79년) 시대 예루살렘에는 480개의 회당이 있었고 팔레스타인 지역 밖으로 흩어져 있던 유다인 거주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는 1000개가 넘는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복음서에는 나자렛(루카 4,16)과 카파르나움(마르 1,21) 회당이, 사도행전에는 다마스쿠스(9,2)와 살라미스(13,5),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13,14), 이코니온(14,1), 테살로니카(17,1), 베로이아(사도 17,10), 아테네(17,17), 코린토(18,4), 에페소(18,19)의 회당이 등장한다.
회당은 주택지대보다 높은 데 세워졌다. 랍비들은 “아무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시에 정결례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시냇물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그 좋은 예가 ‘성문 밖 강가’(사도 16,13)에 있던 필리피 회당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와 그의 온 집안 식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회당 건물은 소박했다. 양식은 지방에 따라 달랐으나 통상 3개의 입구가 있고 정면에 계단이 있었다. 카파르나움에서 발굴된 회당은 주랑에 둘러싸인 뜰이 있고 중앙에는 정결례용 수반이 있고, 바깥벽에 작은 방들이 딸려 있었다. 이 회당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르치셨던 회당(마르 1,21)을 기초로 200년 후에 증축된 건물이다. 이 회당의 맨 아랫단에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던 회당의 검정 현무암이 남아 있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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