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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다(1열왕 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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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1 조회수2,931 추천수1

역사서 해설과 묵상 (111)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1열왕 21,16).

 

 

열왕기 상권 21장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이야기다. 등장인물은 아합과 이제벨, 그리고 이제벨에 동조하는 원로들, 피해자 나봇 그리고 예언자 엘리야다.

 

열왕기 상권 21장 1절에 주인공 나봇과 아합이 등장한다. 나봇은 포도원 주인이고, 아합은 사마리아의 임금이다. 무대는 이즈르엘 계곡에 있는 포도원이고, 그 포도원 곁에는 아합의 별궁이 있다. 아합은 사마리아에 궁전이 있었지만 이즈르엘에도 별장이 있었다. 이즈르엘에 있는 아합의 별궁을 뜻하는 히브리어 헤칼(heqal)은 신의 성전을 나타내는 용어다. 아합의 궁전이 그처럼 화려하고 웅장했음을 암시한다. 그처럼 부족함이 없는 임금이 궁전 곁에 있던 한 농부의 포도원을 빼앗으려 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플롯은 아합이 그 포도원을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합은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팔 수 없다면 다른 땅과 바꾸자고 제의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교환정의나 분배정의만으로 정의가 완전히 실현될 수 없고 사회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나봇은 아합의 청을 거절했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1열왕 21,3). 여기서 ‘조상의 유산’은 주님이 땅의 주인이며 그 땅은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니 임의로 처분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말한 것이다. 아합은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 했다.

 

이야기가 이쯤에서 끝날 것 같았는데, 설화자는 21장 5절에서 왕비 이제벨을 등장시킨다. 이제벨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제벨은 문제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제벨은 시돈 임금의 딸로서 ‘조상의 유산’이라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모든 땅은 임금의 소유라는 군주제에 익숙했기 때문에 아합의 무능력을 용납하지 못했고,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이용해 문제해결에 나섰다. 그리고 아합은 이제벨에게 나봇의 말을 전하면서 ‘조상의 유산’에 대한 언급은 빼버렸다. 이제벨은 밀서를 써서 봉인하고 이즈르엘 성읍의 원로들에게 보냈다. 밀서의 내용은 나봇이 하느님과 임금을 저주했다는 죄목으로 처단하라는 것이었다.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갔다. 아합은 나봇이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 묻지 않았다. 또 자신이 무슨 권한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이야기의 후반부(1열왕 21,17-29)는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하느님께서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씨도 남기지 않고 죽이리라는 것이다. 아합 가문에 내린 심판은 창세기 3장 아담에게 내린 하느님의 선고와 유사하다. 아담이 선악과를 직접 따먹지 않고 여자가 먼저 저지른 일의 공모자가 되었던 것처럼, 아합은 이제벨이 저지른 죄과의 공모자였으며 따라서 그 책임도 져야 했다.

 

아합은 엘리야 예언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1열왕 21,27). 하느님은 아합의 회개를 보고 그의 생전이 아니라 아들 대에 가서 그 가문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아합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인과응보의 철퇴는 다음 세대로 연기되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합 가문에 내린 하느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2열왕 9-10장 예후의 혁명 이야기 참조).

 

묵상주제

 

이즈르엘 성읍의 장로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벨의 밀명에 따라 거짓증인을 내세워 나봇을 돌로 쳐 죽였다. 불의에 용기 있게 항거하기보다는 협조하는 연약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제벨은 나봇이 하느님을 욕했다는 죄목으로 나봇을 처단했다. 이는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려고 하느님과 종교를 이용하는 태도다. 이제벨에게 종교는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려는 방편일 뿐이었다. 명백한 불의를 보고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나는 하느님과 종교를 이용한 적은 없는가?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성(聖)을 가장하지는 않는가?

 

[2014년 10월 19일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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