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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의 선교여정: 제1차 선교여정 (2) 파포스에서의 복음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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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1 조회수3,191 추천수1

[바오로의 선교여정] 제1차 선교여정 ② 파포스에서의 복음선교

 

 

그들이 온 섬을 가로질러 파포스에 다다랐을 때에 마술사 한 사람을 만났는데, 유다인으로서 바르예수라고 하는 거짓 예언자였다. 그는 슬기로운 사람인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의 수행원 가운데 하나였다. 총독은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말로 마술사를 뜻하는 그 엘리마스는 총독이 믿지 못하게 막으려고 그들을 반대하고 나섰다.(사도 13,6-8)

 

 

바르예수와의 대결 사건

 

바오로는 파포스에서 총독을 보좌하고 있던 유다인 출신의 마술사 바르예수와 대결하게 된다.(사도 13,6-12) ‘바르예수’란 히브리말로 직역하면 ‘예수의 아들’이란 뜻이다. ‘예수’란 말이 ‘구원자’란 의미를 가지니 ‘바르예수’는 ‘구원자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지닌 고매한 뜻과 달리 그의 행동은 악마의 자식과 다름없었다. 그는 로마 원로원에서 파견된 키프로스의 총독 세르기우스의 마술사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총독이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불러들여 복음 말씀을 듣고 싶어 하자 이를 방해한다. 방해한 이유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들 때문에 자기 자리가 위태로워질까봐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술사 바르예수가 바오로의 복음선교를 훼방 놓자 두 사람 사이에서 영적 전쟁이 벌어진다. 바로 이 순간에 루카는 사울의 이름이 바오로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준다. “그때에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가득 차 그를 유심히 보며 말하였다.”(사도 13,9-10)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난 다음에도 계속 ‘사울’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여기 13장 9절에서 처음으로 ‘바오로’란 이름을 사용한다. 핵심을 말하자면 다마스쿠스 사건에서 사울이 바오로가 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바오로란 이름이 제1차 선교여정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는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그리스-로마 문화권 안에서 로마식 이름이 유다식 이름보다는 더 친숙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데 더 이로웠고, 필요한 경우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로마식 이름이 도움 되었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선교여행을 하면서 바오로란 이름을 사용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사울이란 이름이 그리스어에서는 부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그리스어에서 ‘다리를 벌리고 걸어가는, 헤픈 모습을 보이는, 성적으로 단정하지 못한’의 의미를 갖는 형용사였다.

 

그러니 바오로가 사울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계집애 같은 남자나 창녀처럼 사람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사람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복음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그러니 제1차 선교여정에서 사울이 아닌 바오로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순전히 복음선교의 효과를 위해서였다.

 

바오로는 바르예수의 훼방이 단순한 인간의 훼방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임을 파악한다. 그래서 그를 ‘악마의 자식’이라 부른다. “온갖 사기와 온갖 기만으로 충만한 자, 악마의 자식, 모든 정의의 원수! 당신은 언제까지 주님의 바른길을 왜곡시킬 셈이오?”(13,10) 악마의 자식이라 부른 것은, 바르예수가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복음선교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복음선교를 뒤에서 방해한 이가 악령이 아니라 악마란 점은 중요하다. 악마, 다른 말로 사탄은 악의 세력의 최고 존재다. 한편 악령은 악마의 졸개들이다. 어둠의 세력의 최고 두목이 직접 나서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하실 때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한 것과 유사하다. 악마는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방해했던 것처럼 지금은 교회의 구원사업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는 바르예수의 정체를 여러 가지 명칭을 사용해서 알려주고 있다. ‘악마의 자식, 정의의 원수, 주님의 바른길을 왜곡시키는 자’ 등의 표현은 단순히 바르예수란 인물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선교지역에 가게 되면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영적 싸움, 그 지역의 미신과 벌이는 영적 싸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선교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미신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왜 선교지역에 가면 복음선포자들이 꼭 점성가, 점쟁이, 마술사들과 충돌하게 되는가? 다른 식으로 물어보자. 왜 선교지역에 가면 복음선포자들이 꼭 미신과 영적 싸움을 하게 되는가? 우리가 선교지역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그 지역에 건설한다는 의미다. 당연히 악마는 하늘나라의 건설을 훼방 놓고 극렬히 저항한다.

 

바오로의 저주가 있자 바르예수의 눈은 흐려지더니 곧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키프로스의 총독 세르기우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서 큰 충격과 놀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바오로가 선포하는 복음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제 보시오, 주님의 손이 당신 위에 놓여있소. 당신은 눈이 멀어 한동안 해를 보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즉시 짙은 어둠이 그를 덮쳐, 그는 사방을 더듬으며 자기 손을 잡아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그때에 그 광경을 본 총독은 주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아 믿게 되었다.(사도 13,11-12)

 

성경 본문은 세르기우스가 믿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믿음이 세례에서 오는 믿음은 아닐 것이다. 로마 원로원 출신이요 로마 도시의 총독이란 그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할 때, 세르기우스가 세례까지는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로마의 종교관과 그리스도교의 종교관이 충돌하기 때문이었다.

 

로마에는 만신전(萬神殿)이란 신당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다. 제우스, 비너스 같은 신은 물론이요 황제 또한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한편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사상 속에서 하느님이 아닌 신들을 다 우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로마제국의 통치자들과 행정관들은 제국의 종교관과 배치되는 그리스도교를 내놓고 믿을 수 없었다.

 

세르기우스는 공식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신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1912년에 발굴된 비문 때문이다. 비문에는 세르기우스 집안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세르기우스의 딸이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세르기우스가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교 복음을 열린 태도로 대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열린 태도는 바오로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한 것과도 연결이 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키프로스에서 복음전도를 마친 다음 배를 타고 터키 남부의 항구도시인 베르게로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로마 행정상으로는 리키아-팜필리아 지역) 형성된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터키 중앙 고원지역(로마 행정상으로는 갈라티아 주)에 위치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간다. 베르게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까지 가려면 3,0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도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베르게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곧장 갔던 이유는 세르기우스의 부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세르기우스와 관련된 비문의 내용을 보면, 그의 집안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한 갈라티아 주에 상당량의 영지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르기우스는 생명의 복음이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야곱의 우물, 2014년 10월호, 송봉모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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