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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성경 속 도시34: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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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8 조회수2,994 추천수1

[성경 속 도시] (34) 아이


승리의 나팔 불던 여호수아, 넘어지다



아이 왕의 처형을 그린 ‘콘스탄티노폴리스 모세팔경’의 세밀화, 11세기, 바티칸 박물관, 로마. 아이는 여호수아가 두번째로 공격한 도시로 패전의 아픔을 맛본 곳이다. 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코에서 첫 번째 승리를 거뒀다. 여호수아는 예리코를 아주 잔혹하게 파괴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소와 양과 나귀 할 것 없이, 성읍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칼로 쳐서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여호 6,21). 이렇게 예리코를 철저하게 파괴한 이유는 가나안 지역에 이러한 소식을 전해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심리적 이유가 강했다고 추측된다.

여호수아가 택한 다음의 전략적 요충지는 베텔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하려면 남북을 가로지르는 산맥을 선점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맥을 차지하게 되면 나라를 가로지르는 통로뿐 아니라 보병뿐인 이스라엘군이 전차를 대동하고 있는 가나안 병사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군에게 산맥은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여호수아는 산맥에 있는 고개 지역을 중심으로 가나안 지역의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려는 계획이었다.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북쪽 16㎞ 거리의 베텔은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목에 있었다. 여기를 장악하면 가나안의 중추를 장악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베텔에 이스라엘이 주력군을 보내기 전에 소규모 정찰대를 보냈다. 정찰대는 예리코 성에서 서북쪽 10㎞쯤에 있었던 아이 성을 발견한다. 아이는 1000년 전만 해도 강력한 도시였다. 정찰대는 돌아와서 아이 성이 정복하기 쉽다고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백성이 다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천 명이나 삼천 명쯤만 올라가도 아이를 칠 수 있습니다. 저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온 백성을 그리로 가게 하여 고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여호 7,3).

그리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삼천 명쯤이 그리로 올라갔지만 그들은 아이 사람들 앞에서 도망쳤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예리코에서 대승을 거두고 방심한 이스라엘이 매복한 적 군사에게 당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군은 첫 패배를 했다. “아이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에서 서른여섯 명을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 스바림까지 뒤쫓아가 내리막에서 그들을 쳐 죽였다. 그러자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려 물이 되어 버렸다”(여호 7,5).

성경은 여호수아의 첫 패배의 원인이 전리품을 챙기지 말라는 아칸의 범죄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아칸은 죽임을 당한다(여호 7,24~26). 여호수아는 즉시 아이 성을 공격하면서 일부 병사들을 아이 서쪽으로 보내 베텔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 성 앞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접근하여 아이 성 안의 병사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패배하는 척하고 광야 쪽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성읍 안에 있던 모든 백성이 성읍을 열어 놓은 채 이스라엘인들을 뒤쫓았다. 이 틈을 타서 매복병들이 아이 성을 점령하고 불을 질렀다. 결과적으로 성을 떠난 아이 성읍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아이의 임금은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여호 8,1-29).

오늘날 이 지역은 아랍인들만 사는 가난한 농촌이며 지금은 산 언덕 위에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아이 성의 전투는 여호수아의 뛰어난 전략이 돋보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많은 교훈을 안겨줬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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