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의 세계: 70인역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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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1-26 | 조회수8,477 | 추천수1 | |
[성경의 세계] 70인역 성경 (1)
구약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경전이다. 기록한 글자는 물론 히브리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히브리 글자는 잊힌다. 오랜 떠돌이 생활 탓이다. 타국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 말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히브리말을 읽을 줄 모르는 세대가 늘어나자 경전을 희랍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희랍어는 당시 지중해 전역의 공용어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3세기 초였다.
이 희랍어를 코이네(Koine)라 했다. Koine는 영어의 Common과 같다. 일반적이고 통속적이란 뜻이다. 알렉산드로스 이후 헬레니즘(희랍문화)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역시 코이네로 기록되었다. 그리스(Greece)는 로마인이 라틴어로 표기한 이름이다. 그리스인은 자기 나라를 헬라스(Hellas)라 했고 자신들은 헬레네스(Hellenes)라 했다. 이들의 문화라 해서 헬레니즘이란 말이 나왔다. 한문으로는 희랍(希臘)이다. 헬라스를 음역(音譯)한 것이다. 이렇듯 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코이네)로 번역한 것이 70인역이다. 번역 작업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임금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인 필라델포스(Piladelpos)였다.
70인역은 70명이 번역했다는 뜻이다. 로마식 표기는 LXX다. L은 50이며 X는 10이다. 전승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 대제사장이 필라델포스의 요청으로 번역자 72명을 알렉산드리아에 보냈다고 한다. 12지파에서 6명씩 선정해 72명을 보냈다는 것이다. 70인역 명칭은 이 전승에 근거한다. 하지만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70인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번역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 번에 이뤄진 번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처음 번역된 것은 모세오경이 전부였다.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 번역했다. 이스라엘 율법(토라)은 모세오경에만 있기 때문이다. 중단된 작업은 기원전 2세기 재개되었고 기원전 1세기 완료되었다. 이후 70인역 성경은 널리 사용되었다. 초대교회의 성경이었고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사용했던 성경이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제관 계급과 율사들은 지중해 연안도시 얌니아로 이주한다. 로마가 종교 활동을 허락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후 얌니아는 유대교 중심이 된다. AD 90년경 이곳에서 구약성경의 정경 목록이 처음으로 만들어진다. 70인역에서 39권만 정경으로 선언한 것이다. 7권은 외경(제2경전)으로 분류되었다. [2015년 1월 18일 연중 제2주일(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의 세계] 70인역 성경 (2)
초대교회는 70인역 성경을 공적으로 사용했다. 신약에 인용된 구약도 70인역이었다. 널리 알려진 사본은 3세기에 등장하는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Hexapla)다. 헥사플라는 희랍어로 여섯 겹이란 뜻이다. 알렉산드리아 교부였던 오리게네스는 여섯 칸에 히브리어 성경과 다섯 편의 희랍어 성경을 나란히 기록했다. 서로 비교하며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유대교는 초대교회가 70인역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히브리어 성경의 희랍어 번역을 다시 시도했다. 이렇게 되자 이미 번역된 70인역 외에 3편의 희랍어 성경이 새롭게 등장했다. 모두 유대교 랍비들이 번역한 것이었다. 오리게네스는 70인역이 히브리어 본문과 다르지 않음을 증거 하려 했다. 헥사플라를 만든 이유다. 첫 칸엔 히브리어 성경을 썼고 둘째 칸은 히브리 성경을 희랍어로 음역(音譯)한 것이었다. 70인역은 다섯째 칸에 있었다. 나머지 세 칸은 유대교에서 번역한 희랍어 성경이었다.
훗날 헥사플라에 실렸던 70인역은 따로 떨어져 나와 사용되었다. 5세기 초 완성된 불가타(라틴어 성경)도 70인역을 참고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예로니모(Hieronymus) 중심의 번역팀이 구약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신약은 희랍어 원문에서 번역한 것이 불가타 성경이다. 오늘날 헥사플라 전체를 필사한 사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실렸던 70인역 사본은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바티칸 사본으로 AD 300년경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번째는 시나이 사본으로 AD 3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게네스는 70인역을 히브리어 성경과 철저하게 비교했다. 그리하여 70인역에는 있고 히브리 성경엔 없는 구절은 찾아내어 표시했다. 한편 히브리 본문에는 있고 70인역엔 없는 구절은 다른 번역본에서 가져와 삽입시켰다. 그러기 위해 6칸짜리 책 핵사플라를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70인역은 일찍부터 초대교회의 성경이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전거(典據)로 사용되었으며(사도 18,28) 바오로 서간과 공관복음에 인용된 구약도 70인역이었다.
그리스 정교회는 처음부터 70인역을 구약성경 표준 역본으로 인정해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중세의 유대인도 70인역을 사용했다고 한다. 히브리어 성경을 낭독한 것이 아니라 희랍어 성경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현재의 구약성경 배열은 히브리어 성경 순서를 따른 게 아니라 70인역 배열을 따른 것이다. [2015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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