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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11: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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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6 조회수3,436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1)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하느님 질투의 이유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느보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구리뱀. 이탈리아 예술가 조반니 판토니의 작품이다.


외우십시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 앞으로 두 달 동안 계속 반복될 구절입니다. 신명기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르침이고, 신명기의 사상을 따르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에서도 결국 핵심은 이스라엘이 이 가르침에 충실했는지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죽던 날 하루 동안에 모압 땅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한 말로 제시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지 “사십 년째 되던 해 열한째 달 초하룻날”(신명 1,3)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이스라엘에게 일러주고, “바로 그날에”(신명 32,48)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들어가 차지할 땅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느보 산 피스가 꼭대기에 올라가 죽습니다(신명 34,1).

억압에 지쳐 새로운 꿈을 품지도 못하고 이집트에 눌러앉아 있으려고만 하는 이스라엘을 일으켜 그 땅을 떠나오게 한 모세입니다. 40년 동안 끊임없이 다시 주저앉으려 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약속을 일깨우며 광야에서 그들을 품에 안고 걸어간 모세입니다. 신명기는 그런 모세의 입을 빌어, 이제 저 요르단 강을 건너 하느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되새겨 줍니다. 시나이에서 맺었던 계약을(탈출 19-24장 참조) 다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집트를 떠난 그 해에 시나이 산에 이르고 계약을 맺었으니 계약을 맺은 지도 40년이 되어가고, 광야에서 약속을 믿지 못했던 세대는(민수 13-14장 참조) 이미 모두 죽어 세대가 바뀌어 있습니다. 신명기는 그 세대가 요르단 강을 건넌 다음의 삶을 위한 책입니다.

그런 신명기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이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입니다. 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부부와도 같은 유일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부부가 혼인의 계약으로 맺어진 배타적인 관계이듯이,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관계도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신명기 전체는 마치 하나의 계약 문서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강대국들, 예를 들어 히타이트나 아시리아 등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주종 관계의 계약을 맺곤 했는데, 신명기 전체의 짜임이 그 계약의 양식과 유사하다는 뜻입니다.

고대의 종주국 계약과 신명기의 구조.


신명기에서 모세는 먼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해주신 일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한 분이신 그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심을 선언하고, 그 분만을 섬겨야 한다는 핵심 계명과 함께 십계명을 전해 줍니다. 12-26장은 오경에서 세 번째로 만나게 되는 법전인 신명기계 법전입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 충실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이 이 법전입니다. 그리고 고대의 계약이나 법전 끝에 늘 있었던 축복과 저주도 신명기에 나타납니다.

십계명에 열 가지 계명이 있고 또 법전에 많은 규정이 들어 있다 해도, 그 모든 것의 핵심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신명기 법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를 예루살렘에서만 드려야 한다는 규정이었던 것도(신명 12장), 혹시나 여러 곳에서 경배를 드리다 보면 그 장소들에서 섬기는 하느님을 마치 각 지역의 신들처럼 오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신명기에서는 “한 분”께 대한 갈림 없는 충실함이 중요했습니다.

다른 신들이 있는지 없는지, 신명기는 아직 그런 문제에 이론적인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른 민족들은 다른 신들을 섬겨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신명 6,14 참조). 부부 관계의 유일성과 같은 의미입니다. 주 하느님은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랑이시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질투하시는 하느님”(신명 6,15 등)이라고 일컬어지십니다. 유일한 관계가 아닐 때에는 질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관계여야 한다면, 곁눈질하는 것은 질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관계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보게 될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까지의 책들은, 이스라엘이 과연 신명기에서 가르친 대로 한 분이신 하느님께만 충실했는지 아니면 곁눈질을 했는지를 돌아보는 책들입니다.

하느님의 요구는 일방적이고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다른 누구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4,34-35). 그리고 40년 동안 광야를 거쳐올 때, “주님 홀로 그를 인도하시고 그 곁에 낯선 신은 하나도 없었다”(32,12).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려 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하느님 한 분에 대한 충실함이었습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 103,2).

[평화신문, 2015년 2월 15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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