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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게라사와 돼지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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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7 조회수3,117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게라사와 돼지 떼


‘표징’ 만족 못하고 재산에 연연한 사람들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는 현지어로 ‘쿠르시’라 불리는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예수님이 무덤에 살던 광인의 악령을 돼지 떼에게 옮겨 넣으신 ‘게라사’ 지방으로 추정된다(마르 5,1-20 루카 8,26-39). 마태오 복음에는(8,28-33) ‘가다라’라고 나온다. 게라사 또는 가다라에 돼지가 떼로 사육되었던 것으로 보아, 이방인 도시였던 듯하다. 돼지는 굽이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짐승이었기 때문이다(레위 11,7). 이 율법 때문에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돼지고기를 쉽게 구할 수 없다.

마르코 5,20에 따르면, 게라사는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다. 데카폴리스는 ‘열 개의 성읍’을 뜻하는 말로서 헬라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로마 시대에는 셈족에게 로마 문화를 퍼뜨리는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데카폴리스에 속한 도시들은 스키토폴리스, 곧 벳산을 제외하고, 모두 요르단 강 동편에 있었다(1사무 31장에 따르면, 벳산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이 필리스티아에 의해 성벽에 매달린 곳이다). 곧, 요르단 강 서쪽에 사는 유다인들이나 남쪽의 나바테아인들과 구분되는, 그리스·로마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낯선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할례를 받는 셈족 문화에 충격을 받았고, 유다인들은 다신을 섬기는 그리스·로마 문화에 종교적 반감이 컸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섞이기도 하면서, 데카폴리스는 이방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던 게라사에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태오와(4,25) 마르코에(5,20 7,31) 따르면, 게라사뿐 아니라 다른 데카폴리스들도 예수님의 선교 장소였다고 한다. 그래서 게라사를 서쪽으로 낀 갈릴래아 호수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 동편의 ‘쿠르시’ 유적지. 성서상 게라사 지역으로 추정된다. 비잔틴 로마 시대 성당 자취를 볼 수 있다.

 

 

호수 북쪽에는 유다인 마을인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가, 동·서쪽에는 이방인 마을인 게라사와 티베리아가 있었다. 유다인들은 부정한 이방인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그들과 떨어진 북쪽에 거주했던 것이다. 곧, 각양각색의 계층을 모두 감싸 안으신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답게 갈릴래아 호수에는 이방인과 유다인, 어부, 백인 대장, 회당장, 세리 등이 고루 섞여 있었으며, “이방인들의 갈릴래아”(이사 8,23 마태 4,15)라 천시 받던 곳이 메시아의 활동 무대로 눈부시게 변모한다.

그리고 게라사에서 예수님은 악령에 사로잡혀 괴로운 광인을 구해주셨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영혼이 통제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주님은, 수가 너무 많아 ‘군대’라 불린 악령을 이천 마리 쯤 되는 돼지 떼에게(마르 5,13) 옮겨 넣으셨다. 사실, 게라사로 추정되는 곳은 갈릴래아 호수 동편의 쿠르시 외에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위치한 제라쉬를 포함한다. 그러나 제라쉬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5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돼지들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로 빠지기엔(루카 8,33) 너무 멀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서기 3~4세기의 교부 에우세비우스도 쿠르시를 게라사로 여겼다. 그리고 5세기에는 쿠르시에 큰 수도원 성당이 봉헌되었다. 특히, 비용이 많이 드는 모자이크들이 성당 바닥에 아름답게 장식된 것으로 보아, 초기 신자들이 쿠르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도원 뒤쪽으로 보이는 언덕에 무너진 채로 남아 있는 탑은, 돼지 떼의 기적이 있었던 곳을 표시하느라 세워 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간의 짧은 시야는 한치 앞을 구분하지 못하여,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주님께 그곳을 떠나달라고 청한다(루카 8,37). 기적은 기적이지만, 돼지 떼를 잃고 큰 손실을 본 사람들이 이런 사태가 반복될까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또 어떤 미친 사람을 구하려고 내 가축에게 손실을 줄까 전전긍긍하지는 않았을지. 표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재산에 연연한 모습은, 그들뿐 아니라 우리들의 인간적인 민낯이기도 하다.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나에게는 손해나지 않을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그래서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하신 것 같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기에(마태 6,19-21). 물질에 눈이 멀면 메시아도 내칠 수 있음을 보여준 게라사의 사건은 역지사지, 곧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 김
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2월 15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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