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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신뢰시편(시편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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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0 조회수3,592 추천수1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신뢰시편(시편 23)



시편은 신약에서 100번도 더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110편을 들어 메시아의 모습을 부각시키십니다. “‘이렇게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그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예수님께 감히 묻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마태 22,45-46) 파스카 만찬을 마치실 때에는 시편의 찬가를 부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시편 22편 첫머리를 인용하여 기도하십니다.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마태 27,4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극도의 고통 속에서 기도하신 시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신뢰하였습니다. 신뢰하였기에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시편 22,1-5)

그러니까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예수님의 외치심은 실망하여 부르짖는 마지막 외침이 아니라, 주 하느님께 절대적 신뢰와 희망을 두는 참신앙인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시편 31편을 들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그리스도인들은 초기부터 개인 신심행위에서뿐 아니라 공동 전례에서도 시편을 노래해왔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이러한 전통을 증언해줍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에 저마다 할 일이 있어서, 어떤 이는 찬양하고 어떤 이는 가르치고 어떤 이는 계시를 전하고 어떤 이는 신령한 언어를 말하고 어떤 이는 해석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1코린 14,26; 참조: 에페 5,19; 콜로 3,16; 야고 5,13)


‘신뢰시편’을 꼽아보라면?

대표적으로 다윗 임금 이름으로 전해오는 시편 23편을 들 수 있습니다. 많은 신자 분들이 여느 때는 물론, 장례미사나 연미사 때 시편 23편을 노래합니다. 그 어떤 말씀보다도 이 시편이 더 큰 위로를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1 [시편. 다윗]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4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이 신뢰시편을 읊으면서 기도하는 신앙인은 야훼 하느님의 다섯 가지 위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첫째로, 시인은 주님을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이 장면을 읽을 때면 스위스 유학시절, 알프스 산 곳곳에 흩어져있는 목장의 평화로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20~30여 마리가 이곳저곳에 몇 마리씩 무리를 이루어 풀을 뜯는 소떼들, 때로는 주루룩 흘러나오는 샘물가에서 물을 마시는 소들, 누워서 되새김질하며 푸르고 맑은 알프스지방에서 맑은 공기와 초원을 즐기는 목장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주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렇게 안심하고 그분 보호아래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삶의 현장을 마련해주시고 지켜주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이나 폭포수 곁에서는 소나 양이 물을 마실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짐승들이 맘 놓고 편안하게 물을 맘껏 들이켜도록 ‘잔잔한 물가로’ 이끄신다고 표현합니다.

세 번째로 주님께서는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은 육신과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본디 구약에서 영혼은 생명이 솟아나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십니다.

네 번째로 주님께서는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 삐뚤어진 길이 얼마나 많습니까? 친구를 잘못 만나서 구렁에 빠지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봅니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 가려내지를 못합니다. 그럴 때 그분께서 짐승뿐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안전한 길,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다섯 번째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로 내게 위안을 주는 분’이십니다. 목자는 지팡이로 양떼에게 방향을 제시하여 안전한 곳으로 이끕니다. 긴 막대는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소나 양떼를 보호해주는 도구입니다.

시편 23편을 노래하는 신앙인은 이들 다섯 가지 주 하느님의 위업을 늘 기억하고 있기에 ‘아무것도 아쉽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시편 23,4ㄱㄴ 참조). ‘내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나 어떤 재앙도 두려워하지 않으리.’ 시인은 이어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까!’

시편 23편의 신앙인은 주님께 굳게 믿는 신뢰의 바탕을 그분 이름에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에게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 이상의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계시해주셨다는 것은 그분 자신의 일부를 건네주셨다는 뜻이 됩니다.


시편 23편의 절정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시편을 노래하는 신앙인은 자신이 그토록 신뢰하는 주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그러한 믿음을 이 시편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엄마가 곁에 있는지 늘 되풀이하여 확인합니다. 잠시라도 떨어져있게 되면 사뭇 불안해합니다. 엄마가 곁에 있어야 잠도 깊이 또 오랫동안 깨지 않고 잡니다. 시인은 이렇게 하느님을 늘 곁에 계시는 분으로, 아니 자신이 그분 곁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늘 그렇게 그분께서 내 곁에 계심을, 내가 그분 곁에 다가와 있음을 체험하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3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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