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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이스라엘 이야기: 뱀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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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6 조회수4,615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뱀의 패러독스


영특하나 간교함 교활함 지닌 이중적 존재



요르단 느보 산 정상, 십자가 위의 구리뱀 형상.


뱀은 창세 3,1에 처음 등장하며, 히브리어로 ‘나하쉬’라 한다. 선악과에 얽힌 이야기 때문에, 뱀은 항상 부정적인 심상을 일으킨다. 묵시 12,9은 창세기의 뱀을 사탄으로 보았다. 그런데 뱀이 하와를 유혹한 벌로 저주를 받아 배로 기게 되었다는 창세 3,14은, 그전에는 다리가 있었거나 다른 모습이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 같다. 더구나 신기한 것은, 뱀이 말하고 논쟁할 수 있는 영특한 동물이었다는 것.

뱀은 ‘하느님이 만드신 들짐승들 가운데 가장 간교했다’(창세 3,1)고 한다. 간교하다는 히브리어로 ‘아룸’인데, 기본적으로 영리하다, 슬기롭다는 뜻이다. 잠언 12,23의 “영리한 사람은 지식을 덮어 두지만 우둔한 자의 마음은 어리석음을 외쳐댄다”에도 동일한 아룸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태 10,16은 ‘뱀처럼 슬기로워지라’는 말로,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뱀의 패러독스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파충류는 전세계적으로 신화나 종교 예식에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무기와 용을 신성하게 보았고, 고대 근동인들도 뱀을 죽음과 생명의 원천으로 여겼기에 뱀 모양을 한 신상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뱀은 수족이 없으면서도 움직임이 빠르고, 깜박임 없이 상대를 꿰뚫어보는 눈 때문에 묘한 공포를 일으킨다. 뱀 독은 즉각적인 죽음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죽음을 가져오는 뱀의 능력이 생명을 관할하는 능력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뱀에 대한 믿음은 탈피와도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오래된 껍질을 벗고, 늘 다시 젊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다른 동물이 아닌 뱀이 에덴 동산 이야기에 등장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곧, 성경은 뱀이 초월적인 힘을 가진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뱀은 영리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이기에, 구약에서 혼돈, 곧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생물이다. 이사 27,1은 창조주 하느님을 거스르는 혼돈의 ‘뱀 레비아탄’이 마침내 벌을 받고 사라지게 될 것임을 선포한다. 시편 74,14은 하느님이 레비아탄의 머리를 깨뜨리셨다고 찬양한다.

 

 26,13은 하느님이 도망치는 뱀을 꿰찌르셨다고 칭송한다. 곧, 레비아탄으로 형상화된 뱀은 사악한 세력의 대명사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과 같은 평화가 확립될 훗날에도 뱀은 태초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끝까지 배로 기고 흙을 먹어야 한다(이사 11,6-9 65,25). 그래서 ‘뱀처럼 슬기로우라’고 가르치는 마태 10,16이 더욱 흥미롭다.

뱀의 양면성은 민수 21,8-9에도 드러나,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특성을 잘 반영해 준다. 광야에서 유랑하는 동안 이스라엘이 불평을 늘어 놓자, 하느님은 불 뱀으로 그들을 치셨다. 그리고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보는 자마다 낫게 하셨다. 곧, 바로 이 대목에 파괴력과 치유력을 함께 지닌 뱀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불 뱀’은 ‘나하쉬 사랖’이라 하는데, 물리면 불이 나는 것처럼 아파서 그 이름이 유래한 듯하다. 이 불 뱀 사건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는 느후스탄이라 불리는 구리 뱀 숭배까지 있었다. 이것은 히즈키야 임금의 종교개혁 때 사라지게 된다(2열왕 18,4). 그리고 요한 3,14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불 뱀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비유적으로 인용했다.

- 기원전 2000년경의 코브라 형상을 한 여신 상.

 

 

구리 뱀 기둥을 십자가의 예표로 보는 견해는 요한 복음에만 나오지만, 교부들의 문헌에는 자주 언급된다. 구리 뱀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구리 뱀 기둥은 십자가를 예표한다. 곧, 요한 복음은 유다인들에게 걸림돌이나 어리석음(1코린 1,23), 저주(갈라 3,13)처럼 보이는 십자가를 영광과 고양의 의미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래서 불 뱀으로 벌을 받은 백성이 죄를 뉘우치자, 구리 뱀을 매달아 바라보는 자마다 살 수 있게 하신 것처럼, 인류가 원죄로 죽음을 선고 받았으나,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신 예수님을 통해 통회하면 살게 되라는 신학이 녹아 있다.

그리고 마태 10,16은 ‘뱀처럼 슬기로우라’는 말에 ‘비둘기처럼 순박할 것’을 덧붙임으로써, 뱀에게도 좋은 점이 있으니 그것을 닮되, 영특함이 교활함이나 간교로 변질되지 않도록 비둘기의 순수함을 더하라고 조언한다. 곧,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모든 현상에 담긴 양면성에서 선을 찾아 본받는 지혜, 그리고 장점을 오용하여 악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15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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