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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성경의 기도: 마태오에 따른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 주님의 기도 해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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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8 조회수3,804 추천수1

[신약성경의 기도] 마태오에 따른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


‘주님의 기도’ 해설 1



‘주님의 기도’의 맥락

마태오 복음서 안에서 ‘주님의 기도’(6,9-13)는 넓게는 산상설교(마태 5-7장) 안에 들어있고,1) 좀 좁게는 자선(1-4절)과 기도(5-15절)와 단식(16-18절)의 예를 통하여 “하느님 앞에서의 의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려고 하는 마태 6,1-18의 맥락에 나온다.

그런데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이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다.

① 잘못된 태도로 하는 행위(위선자들의 태도)의 묘사와 그런 행위의 금지 : 2절(자선), 5절(기도), 16절(단식). ② 올바른 태도로 하는 행위의 묘사와 그런 행위의 권고 : 3절(자선), 6-7절(기도), 17-18ㄱ절(단식). ③ 올바른 행위의 결과로 언급되는 후렴.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4절-자선, 6절-기도, 18절-단식).

마태 6,1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관한 이 부분 전체의 주제문이라고 볼 수 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이 말씀에 따르면 여기서 예수님께서 근본적으로 문제로 삼는 태도는 하느님의 뜻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앞에서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위선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의 기도’의 바로 앞(마태 6,5-8)에 나오는 ‘올바른 기도’에 관한 가르침

마태 6,5-15의 구성 : 처음의 두 구절(5-6절)은 자선에 대한 가르침의 경우와 거의 같은 순서와 내용을 갖추고 있다. 그다음 7-8절에는 잘못된 기도의 예로 이방인들의 수다스러운 기도가 언급되어 있다. 그다음에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9-13절)가 앞에서 묘사된 잘못된 기도와 대비되어 모범적인 기도로 제시된다.

주님의 기도 다음에는 주님의 기도에 나왔던 “용서”라는 말이 계기가 되어,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속해 있던 공동체 안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였던 “형제들 사이의 용서”에 관한 말씀(마태 18장 참조)이 첨가되어 있다.

마태 6,5-6 :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유다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기도의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었고, 지방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회당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 때에 규칙적으로 드리던 기도들은 거리나 광장에서도 바칠 수 있었다.

자선에 관한 가르침에서처럼 여기 기도에 관한 가르침에서도 예수님은 우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도”, 자기가 경건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기도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다(루카 18,9-14에 나오는 ‘바리사이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마저 ‘잘난 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 그것도 “문을 닫은 다음 기도하라.”는 말씀은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는 목적으로 “회당과 거리모퉁이에 서서 ”나보란 듯이 기도하는 자세가 잘못된 자세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신 말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곧 예수님의 위의 말씀은 거리나 회당에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 또는 기도는 반드시 골방에서 문을 닫고 해야한다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여섯 가지 반대명제들(마태 5,21-48)에서 자주 나왔던 것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기도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의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 사실, “골방에서 문을 닫은 다음 기도하는 것” 자체가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마음가짐만 올바로 되어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거리에서나 회당에서 바치는 기도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보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는”(마태 5,16) 훌륭한 기도가 될 수 있다. 너무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겠지만, 박해를 받는 상황이나 순교자들의 기도를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도의 장소가 아니라,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가 문제이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욕구에 관하여 성찰하게 한다. 그 욕구란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사실, 우리의 내면 깊이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대단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은 특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의욕을 잃는 경우들이 많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는 능력뿐 아니라, 신앙적인 측면에서마저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뿌리 깊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다음과 같은 믿음은 우리를 이런 욕구로부터 진정 해방시킬 수 있다.

하느님, 그분은 자비로운 분이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하는 일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것, 세상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 않거나 잊어버리더라도(시편 27[26],10 :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주시리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만은 우리의 숨은 일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은, 우리 신앙인들을,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칭찬받고, 인정받고, 박수갈채를 받아야만 한다는 내적인 압력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마태 6,7 :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여기에는 잘못된 기도의 예로 수다스러운 이방인들의 기도가 제시되어 있다. 수다스러운 기도의 예를 우리는 1열왕 18장에 나오는 엘리야 예언자와 바알 예언자들의 대결 장면에 나오는 바알 예언자들의 기도에서 만날 수 있다.

마태 6,8 :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수다스러운 기도는 하느님을 우리의 얄팍한 언어로 조종하려는 것이나 크게 다름이 없다. 예수님은 “많은 말을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하는” 기도가 잘못된 기도라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8절)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기도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중요한 질문 하나가 제기된다. “‘하느님은 청하기도 전에 기도하는 당신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부터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이다.

마태 7,7-8절에 나오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예수님은 분명히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로써 청하라고 요청하신다(필리 4,6-7도 참조).2)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헌신, 감사의 표현을 하라고 요청하시는 것이다.3)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ㄱ)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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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주님의 기도는 산상설교 안에서도 중심적 위치에 있다. 특히 울리히 루츠의 다음 글을 참조 : U. Luz, Das Evangelium nach Matthaus(Mt 1-7), (EKK 1/1), Benziger-Neukirchner Verlag, 1985, pp.185-187.

2) 필리 4,6-7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필리 4,6-7은 기도와 관련하여 대단히 소중한 말씀이다. 신앙인들의 소중한 영적 양식이 될 수 있는 말씀이다.

3) 저명한 성서학자 오스카 쿨만은 기도의 필요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하심과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심 속에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그것을 원하신다. 감사와 전구/청원은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의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통교하시며, 사랑하는 의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Oscar Cullmann, Prayer in the New Testament, SCMPress, 1995, p.143; 한국어 번역본 [「기도」, 김상기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7년, 271쪽]이 있지만, 저자의 뜻을 더 잘 살리고 싶어 영문판을 참조하여 필자가 번역하였다.).

* 김영남 다미아노 - 의정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교수로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특히 바오로 서간)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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