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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이스라엘 이야기: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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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31 조회수3,461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호산나!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에… 군중들 “구원하소서”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 전경. 올리브 산은 해 뜨는 쪽에 있으면서도 반대 편에 유다 광야를 끼고 있어,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와 같은 상징성을 띤다.


‘호산나’, 곧 히브리어로 ‘호샤-나’는 ‘구원을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던 순례자들이 부른 찬송, 시편 118,25-26에 이 표현이 나타난다. 히브리인들은 모세오경 율법에 따라, 일년에 세 번, ‘파스카 축제’, ‘주간절’, ‘초막절’에 성전을 순례해야 했다(신명 16,16). 파스카 축제 준비로 예루살렘에 인파가 몰렸을 때, 예수님이 입성하시자 군중들은 위 시편을 부르며 존경 받는 예언자를(마태 21,11) 맞아들였다(마태 21,9: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구약에서 선포한 미래의 ‘다윗’ 예언은(예레 33,15 에제 34,23 등) 바빌론 유배 이후 다윗 후손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솔로몬이 노새를 타고 즉위한 것처럼(1열왕 32-40)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다윗 후손께 환호했다(요한 12,13).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인 종려나무는 라틴어 발음에 따라 ‘빨마나무’라고도 한다. 구약에는 종려나무가 ‘야자나무’로 나온다. 야자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은 기세와 위풍당당함으로, 예부터 권세와 승리의 상징이었다. ‘임금이신 하느님’을 기념하는 “초막절”에(즈카 14,16) 야자나무 가지가 사용되었고(레위 23,40 느헤 8,15), 성전에도 야자수를 새겨 ‘임금이신 하느님’을 기념했다(1열왕 6,29).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흔든 종려 가지도 비슷한 상징성을 띠었을 것이다(요한 12,13: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참조). 군중은 또 예수님 발 밑에 겉옷을 깔았다. 이것은, 특히 겉옷이 가진 것의 전부인 가난한 이들이(탈출 22,26) 표할 수 있는 최고의 예였다(2열왕 9,13 참조).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레드 카펫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상징적인 모습으로 입성하심으로써, 당신을 통해 이루어질 하느님 나라를 예고하셨다.

주님 공생애의 중심지는 갈릴래아 호수다. 버스로는 예루살렘까지 두 시간 가량 소요된다. 대부분 도보로 다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 거리다. 그러니 중간중간 쉼터가 필요했을 텐데, 그 길목에 예리코가 있었다. 예리코는 오아시스 성읍이었기에, 식량이나 물이 떨어질 즈음 길손들이 쉬어가기 좋았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가기 앞서 예리코에 들르셨으며, 그곳에서 소경을 치유하셨다(마태 20,29-34 루카 18,35-43). 이것은 눈먼 이스라엘을 일깨우시겠다는 일종의 상징 행위이기도 하다. 어쩌면 파스카 축제를 위해 길을 가다가 예리코에 들른 이들이 소경의 기적을 목격한 후,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 주도적으로 환호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나무 중 하나로 꼽히는 종려나무.


예리코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어귀에는 ‘베타니아’가 있었다. 베타니아는 마리아와 마르타, 라자로 남매가 살았던 곳이다(요한 11,1). 예수님은 라자로 남매의 집에서 쉬신 후(요한 12,1), 벳파게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던 것 같다(마태 21,1). 벳파게는 예루살렘의 동쪽 끝으로서, ‘덜 익은 무화과의 동네’라는 뜻이다. 당시 유다인들은 벳파게에서 성전 ‘제사 빵’을 가져왔다고 하니, ‘생명의 빵’이자 희생 ‘제물’이 되실 예수님이 벳파게에서 입성을 시작하신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베타니아와 벳파게가 있는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의 동쪽 산이다. 곧, 올리브 산은 ‘해’ 뜨는 쪽에 있으면서도 반대 편에 유다 ‘광야’를 끼고 있어,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와 같은 상징성을 띤다.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도 올리브 산이었으므로(루카 24,50-51), 빛과 부활의 상징임을 강조했다.

올리브 산에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평화를 가져오는 겸손한 메시아’를 예언한 즈카 9,9을 실현한다(“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곧, ‘군마’가 아닌 ‘나귀’를 타심으로써, 땅 끝 민족들에게까지 전쟁 대신 평화를 선포하셨다(즈카 9,10). 당시 군중들은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메시아를 기대하고 환호했으나, 하느님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당신 뜻을 이루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간 어린 양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지만, 세상 어떤 임금도 굴복시키지 못한 죽음을 이기심으로 만왕의 왕이 되셨던 것이다.

* 김명숙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29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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