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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탄원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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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8 조회수5,268 추천수2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탄원시편

 

 

탄원시편은?

시편을 유형별로 나누어보면 찬양시편이나 교훈시편보다 탄원시편이 제일 많습니다.

탄원하는 이가 하나일 때 ‘개인 탄원시편’이라 하고 여럿일 때 ‘공동 탄원시편’이라 합니다.

흔히 시편 안에서 기도하는 이가 ‘나(저)’일 경우와 ‘우리(저희)’일 경우를 보고 개인 탄원시편인가 아니면 공동 탄원시편인가를 구분 짓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제나 임금이 국가를 위하여 또는 전례를 거행하는 공동체를 대리하여 단수 일인칭으로 탄원기도를 드린 경우도 있었다고 봅니다.


공동 탄원시편을 꼽으라면?

두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깨어나소서, 주님, 어찌하여 주무십니까? 잠을 깨소서, 저희를 영영 버리지 마소서… 저희를 도우러 일어나소서. 당신 자애를 생각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시편 44,23-27ㄱ)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요셉을 양 떼처럼 이끄시는 분이시여.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이시여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에프라임과 벤야민과 므나쎄 앞으로! 당신의 권능을 깨우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80,2-4)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고난과 재난 또는 천재지변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스라엘인들 역시 그러한 여건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게다가 남쪽에서는 이집트 왕국, 북쪽에서는 아시리아가, 동쪽에서는 신바빌론 제국에 의해 늘 위협받거나 그들로부터 침입을 받아 늘 ‘당하는 민족’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인들은 성소에 모여 전례를 거행하면서 야훼 하느님께 탄원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분께서 자신들을 고통 속에서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대대로 주 야훼께서 자신들을 선택하시어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시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셨음을 되풀이하여 기억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과 주 하느님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운명체 관계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며 살아왔습니다.


개인 탄원시편은?

개인 탄원시편은 고난 받는 한 신앙인의 외침입니다. 개인 탄원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이 개인 탄원시편이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본디 이스라엘 민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씨족사회였습니다. 그러다가 왕정의 등장으로 인해 차츰 도시가 생겨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부유층과 빈곤층이 생겨납니다. 이스라엘의 문화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일고 간격이 벌어지며 싸움이 잦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기 힘듭니다. 그들이 호소하는 원수나 적이 누구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개인 탄원시편의 특징은?

먼저 개인의 상황에서 공통적인 것에로, 특수상황에서 일반적인 상황으로 옮아가는 경향을 띱니다. 내용이 어느 개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다면 다른 이들이 함께 공감하며 기도하기 힘들 것입니다.

다행히 이스라엘의 탄원시편은 보편화하는 경향을 띠기 때문에 신앙인이면 누구나 그 또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면서 누가 읊은 시편이든 상관없이, 그 시편을 홀로 기도하거나 여럿이 함께 노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시인들의 원수나 적수들은 누구인가요?

그들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으며 대체 무슨 해로운 일을 신앙인들에게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캐물을 수도 캐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바는 그들이 짐승도 아니고 마귀도 아닌, 오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흔히들, 낮에나 밤에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붉은 북극곰이나 귀신이 아니라 우리가 늘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사실이 우리 옷깃을 여미게 해줍니다. 몇 사람이 한 집에서 함께 산다고 해도 서로 신뢰하거나 위해줄 맘이 결여되어있다면 그곳은 이미 생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체험한 현자는 말합니다. “다투기 좋아하고 성 잘 내는 아내와 사는 것보다 황량한 땅에서 사는 것이 낫다.”(잠언 21,19)


탄원기도를 읊는 이는?

그들은 한결같게 하느님 앞에는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악한 자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약자이기에 영원하신 분께 구원의 손길을 간청합니다. 시인은 확신합니다. 모든 고통의 근본원인은 하느님 자신이시라고. 그는 인간의 괴로움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한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인은, 온 누리의 창조주로서 오로지 그분만이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며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실 수 있는 최후의 결정자이며 모든 것의 승리자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탄원시편 시인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먼저, 탄원시편은 한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밑바닥까지 다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어서 시인은 그 어느 인간도 아니라, 하느님께 직접 아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오로지 하느님 편에 서기로 결단 내린 자입니다. 그의 적은 당연히 그분에게 등을 돌려 악(마)의 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끝으로 고통의 벼랑 끝에 있는 시인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신앙인입니다. 더구나 당시(구약시대)에는 아직 영원한 생명,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아직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개인 탄원시편을 예로 든다면?

시편 88을 꼽고 싶습니다. “주님, 제 구원의 하느님 낮 동안 당신께 부르짖고 밤에도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제 기도가 당신 앞까지 이르게 하소서… 제 영혼은 불행으로 가득 차고 제 목숨은 저승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죽은 이들 사이에 버려져 마치 무덤에 누워 있는 살해된 자들과 같습니다. …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십니까… 어려서부터 저는 가련하고 죽어 가는 몸 당신에 대한 무서움을 짊어진 채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들이 날마다 물처럼 저를 에워싸고 저를 빙 둘러 가두었습니다. 당신께서 벗과 이웃을 제게서 멀어지게 하시어 어둠만이 저의 벗이 되었습니다.”(시편 88,2-19)


오늘 우리는?

우리 역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서슴없이, 옛 이스라엘 신앙인(시인)들의 탄원기도를 맘껏 함께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유산이며 시편기도의 아름다운 전승이 아니겠습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4월호,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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