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40) 미츠파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등극
- 미츠파로 추정되는 곳 중 한 곳으로 예루살렘 북부에 있는 텔 엔 나스베. 출처=「성경 속의 도시 탐험」, 기독통신사
성경에는 여러 곳의 ‘미츠파’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베냐민 지역의 미츠파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선 학계에서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지만 베냐민 지역의 미츠파는 예루살렘 북방 12㎞ 지점에 있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장소였다. 특히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 종교적 활동의 중심지였다.
판관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불안정한 과도기에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였던 사무엘이 전국을 공식 순회하던 중 자주 방문해 영적 운동을 전개했던 장소가 바로 미츠파다. “그러고 나서 사무엘이 말하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을 미츠파로 모이게 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리겠소”(1사무 7,5).
유다 멸망 후 바빌론에서 파견된 총독 그달야는 미츠파를 수도로 삼았다. “바빌론 임금이 그달야를 총독으로 임명하였다는 소식을 군대의 모든 장수와 그 부하들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 곧 느탄야의 아들 이스마엘, 카레아의 아들 요하난, 느토파 사람 탄후멧의 아들 스라야, 마아카 사람의 아들 아잔야와 그 부하들은 미츠파에 있는 그달야에게 갔다”(2열왕 25,23).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인들의 만행(판관 19,11-30)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응징을 결의한 장소가 미츠파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츠파에 모여 범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나섰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앗 땅에서도 온 공동체가 일제히 미츠파로 주님 앞에 모여들었다. 온 백성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수장들도 칼로 무장한 보병 사십만 명으로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의 회중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판관 20,1-2). 그리고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는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의 자손들에게 돌아가, 성읍의 남자 주민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대로 모조리 칼로 쳐 죽였다. 나머지 성읍들도 모두 불태워 버렸다”(판관 20,48).
또 미츠파는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 습격해온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 “사무엘이 아직 번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다가왔다. 그날 주님께서 필리스티아인들 위에 큰 소리로 천둥을 울리시어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시자,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배하였다”(1사무 7,10).
그러나 미츠파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 장소라는 것이다. 사무엘은 판관직을 자신의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더 이상 판관에 의한 지도체제가 아닌 왕정제도의 도입을 사무엘에게 요구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츠파에 불러모아 사울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들이 달려가 그곳에서 사울을 데리고 나왔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에 서자, 그의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다.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주님께서 뽑으신 이를 보았소? 온 백성 가운데 이만 한 인물이 없소’ 하고 말하자, 온 백성이 환호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1사무 10,23-24). 뛰어난 전투 지휘 능력을 갖춘 사울이었지만 백성 중에는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베냐민은 가장 작은 지파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 에돔, 초바 임금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워 연전연승했다(1사무 14,47-48). 사울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백성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1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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