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요한의 서간들: 사랑과 진리에 대한 권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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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5-22 | 조회수3,846 | 추천수1 | |
[요한의 서간들] 사랑과 진리에 대한 권고
요한 2,3서
요한 2서와 3서는 그리 길지 않은 서간입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가장 낯선 신약성경의 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스 말로 보면 요한 2서는 13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 담긴 단어는 245개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요한 3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내용을 담고 있는 서간으로 219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한 2,3서를 위한 배경
요한 2서와 3서는 공통적으로 “원로인 나”로 시작합니다. 편지의 형태로 되어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는 편지 서두에 자신을 “원로”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요한 서간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것처럼 요한 서간 모두는 요한 공동체의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요한 2서와 3서의 ‘원로’라는 표현은 이러한 생각과 충돌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사용된 용어인 원로(presbuteros)는 당시에 한 공동체 안에서 전승을 전하는 지도자의 역할을 하거나,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학자들이 생각하는 요한의 공동체와 대립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요한 1서가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보내는 내용이라면 요한 2서는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그리고 요한 3서는 ‘가이오스’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이 그 차이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요한의 서간들은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서간들 사이의 선후 관계는 어떨까?’라는 질문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요한 복음보다는 요한의 서간들이 더 늦은 시기에 쓰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한의 서간들 사이의 선후 관계는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 1서의 내용을 요약한 형태가 요한 2서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 반대로 요한 2서가 시간적으로 먼저이고 그 내용을 더욱 발전시킨 형태가 요한 1서라고 보기도 합니다. 요한 서간들 사이의 관계는 이렇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밝혀줄 만한 자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육화(강생)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요한 1서의 내용보다 요한 2서 내용이 신학적으로 발전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 요한 2서가 조금 더 후대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한 2서와 3서의 관계는조금 더 복잡합니다. 두 서간에서 보이는 명확한 차이점은 편지를 받는 이가, 하나의 공동체(요한 2서)와 한 개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만 가지고 어떤 편지가 더 먼저인지 밝히는 것은 쉽지 않지만 교부들의 기록들에 요한 3서가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더 후대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 2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요한 2서는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표현에서 일부 학자들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이 편지는 하나의 작은 공동체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편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3절은 편지 서문에 해당하고, 12-13절은 편지 결문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선택받은 이들’(1절, 13절)이라는 표현으로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4-11절이 이 편지의 내용 부분입니다.
진리와 사랑
시작에서 이미 이 편지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글을 써 보내는 공동체에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3절)라고 인사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의 다른 편지들과 비교해서 특이한 점은 이 인사말에 편지를 받는 이들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저자도 포함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서간과는 다르게 수신인에게 전하는 인사에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언급합니다. 이와 동일한 형태는 티모1서와 2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지의 서문(1-3절)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표현은 ‘진리와 사랑’입니다.이 주제는 요한 2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요약해 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4-6절은 진리와 사랑에 대한 권고로, 여기서 표현되는 것은 ‘계명의 준수’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5절). 이미 1요한 2,7-11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옛 계명이면서 또한 새로운 계명입니다.
사랑의 계명이라는, 새로운 계명에 대한 표현은 요한 13,34-35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요한 복음과 서간들은 이 계명, 곧 사랑하라는 것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복음서와 서간에 ‘사랑’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요한의 공동체에 필요했던 덕목이라 생각할 수 있고, 요한의 공동체를 특징짓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6절). 1요한 3,11을 생각하게 하는 이 표현은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4-6절의 내용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로 요약됩니다. 서문에서만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편지를 이어가는 주제는 ‘진리와 사랑’입니다.
7-11절은 새로운 내용을 전개하는 부분이 아니라, 4-6절에 언급된 진리와 사랑에 대한 신학적인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1요한 4,1-6과 유사합니다. 강생을 받아들이지 않는, 곧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적’이자 요한 공동체의 적이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요한 2서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강조점을 둡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고백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느님 안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과 친교를 맺는 이들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살아갑니다. 마치 편지 내용의 전반부가 실천적인 면에 대한 권고라면, 후반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편지의 결문은 다른 편지들에서 보이는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 또한 만남을 통해 소통하기를 희망하며 편지를 마칩니다. 왜냐하면 편지가 갖는 특성이 지금 당장 만날 수 없다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3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요한 3서는 요한 2서보다는 요한 복음이나 요한 1서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진리와 증언에 대한 표현은 요한 복음을, 그리고 ‘악을 본받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권고는 1요한 3,4-10의 내용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한 3서는 내용적으로 사랑보다는 진리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한 3서에서는 ‘사랑하라’는 권고가 명시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요한 3서에는 가이오스, 데메트리오스, 그리고 공식적으로 공동체를 비난하는 디오트레페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편지에서 전해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요한 공동체가 처했던 상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특히 디오트레페스에 대한 언급은 신앙고백에서 비롯된, 곧 강생에 대한 다른 믿음을 가졌던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경고(그리스도의 적)를 넘어 실제적으로 공동체 안에 벌어졌던 분열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한 3서는 다른 요한의 서간들이 가진 일반적인 가르침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 서간 이후에 요한의 공동체에 대한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어느 시기가 지나 요한의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했고 그 이후 기존의 정통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통합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흔적을 요한 3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허규 베네딕토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로 수품,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약성서 교수로 요한 묵시록과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허규 베네딕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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