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묵시록의 전례적 대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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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5-22 | 조회수3,770 | 추천수1 | |
[요한 묵시록의 올바른 이해] 묵시록의 전례적 대화
묵시록은 분명 묵시문학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1,4-5을 보면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쓴다고 하면서 은총과 평화를 비는 인사를 건네고 있다. 발신인과 수신인을 밝히고 은총과 평화를 비는 형식은 사도들의 서간 도입부에서 모두 나타나는 요소이다.
묵시록 전체를 보았을 때 서간문의 문학유형을 이루는 요소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지만 묵시문학의 특징에 비해서는 표면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묵시록의 이러한 특징은 그 기원이나 용도에 대해 많은 것을 일러줄 수 있기에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례적 대화의 형식
이 단락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원문이 지니고 있는 문법적, 구문론적 불일치이다. 전치사 뒤에 맞지 않는 명사의 격변화가 오는가 하면, 주격과 여격이 함께 연결되기도 한다. 또한 내용의 단절도 그에 못지않게 두드러진다.
먼저 4절부터 5ㄱ절까지에는 발신인(요한)과 수신인(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을 밝힌 다음 뒤이어 은총과 평화를 비는 인사가 나온다(여러분에게 빕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된 “여러분”은 5ㄴ절에서 “우리”로 바뀌어 6절까지 이어진다“(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죄에서 풀어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7절에 이르면 갑자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앞의 내용과 어떤 연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8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일인칭으로 말씀하신다“(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그러고 보면 1,4-8의 단락은 서로 단절된 소단락, 곧 1,4부터 1,5ㄱ, 1,5ㄴ부터 1,6, 그리고 1,7과 1,8로 나뉜다. 그러나 이 단절은 자체로 서로 연결된 구조도 보이는데, 그것은 1,4-5과 1,8에 나타나는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분”이라는 표현과 1,5ㄴ-6과 1,7에 나타나는 “아멘.”이라는 표현이다. 이 구조는 분명한 교차 대구법이며, 1,4-8의 전체 단락을 아우르는 하나의 통일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단절과 통일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단락의 해결책은 전례적인 차원에서 나온다.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이 단락 앞에 나오는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1,3ㄱ)라는 표현은 진행 중인 전례 공동체를 암시한다. 곧, 한 사람은 읽고 다른 사람들은 듣는 것인데, 이런 관계는 묵시록의 결문에도 다시 나온다“(이 말씀을 듣는 사람도 ‘오십시오.’ 하고 말하여라.”22,17).
그뿐 아니라 1,4의 일곱 교회에 대한 언급도 분명히 전례적 환경을 연상시킨다. ‘교회(에클레시아)’라는 용어는 장소적 의미를 지니면서도 구약의 전례적 의미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서문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특정한 교회들이라기보다 총체적‘(일곱’의 상징)이고 전체적인 교회를 암시한다. 묵시록은 교회들을 위한 것이고, 전례적 공동체 안에서 읽히기 위한 책이다. 또한 두 번 나오는 “아멘.”도 전례적인 환경을 암시한다.
전례적인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8절이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틀림없이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대변인, 곧 독서자가 말씀을 전한다. 독서자가 공동체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대화가 구체적으로 전례적 대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1,4-8의 단락이 전례적 대화의 형식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으며, 1,3에서 우리는 이미 대화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다. 곧 ‘독서자(낭독하는 이)’와 ‘청중(듣는 사람들)’이다.
전례적 대화의 재구성
우리는 이 전례적 대화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볼 수 있다.
독서자 : “은총과 평화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그분에게서 그리고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또한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또한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1,4ㄴ-5ㄱ).
청 중 :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풀어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1,5ㄴ-6).
독서자 :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1,7).
청중 : “예, 아멘”(1,7).
독서자 :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십니다”(1,8).
구세사의 능동적 전개
삼위일체의 구조에 따른 삼중 축복은 전체적으로 구세사의 능동적 전개를 보여준다. 묵시록에서 가장 특징적인 하느님의 호칭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1,4.8; 4,8; 11,17; 16,5)이다. 이 표현은 구세사에서 하느님의 능동적 활동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느님은 권능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면서 구원의 모든 과정을 활발하게 하시고, 그것을 시간 안에서 발전시키시는 분이시다. 또한 부정적인 세력들과의 변증법적인 대립을 통해 윤리적이고 물리적인 모든 악을 없애시는 분이시다.
마지막에는 모든 장애물을 물리치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으로서 구원된 공동체(천상 예루살렘)나 개인과 특별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21,7.22 참조).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형태“(일곱 영에게서”) 소개되는 성령은 구세사의 전개에서 이루어지는 은총과 계시의 분배적인 (영들) 총체성 ‘(일곱’의 상징) 안에서 지칭되며, 단수로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속성들도 모두 같은 선상 위에 있다. 하느님께서 구세사를 위해 하신 약속들의 증인이시고, 사람들의 죽음에 형제로서 동참하시고, 부활하신 분으로서 생명을 나누어 주신다. 세상의 임금들로 표현된 부정적 세력들에게 승리하는 그분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구세사의 중심에 자리 잡게 한다.
대화의 이 첫 번째 단계에서 독서자의 인사는, 따라서 하느님, 성령, 그리스도께서 연관된 구세사의 역동성 안에서 듣고 있는 공동체를 향한 것이다. 공동체의 응답(1,5ㄴ-6) 안에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스스로가 역사 속에서 표현되었고 표현되고 있는 구원의 대상이라는 깨달음이 담겨있다. 공동체는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사랑(현재형 동사)을 깨닫는데, 그 사랑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죄에서 풀렸던 순간에 처음 계시되었다.
그러나 공동체는 단순히 구세사의 대상만이 아니라, 그 능동적 주인공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 구속되고 사랑받는 공동체는 ‘왕적 권한(나라를 이루어)’도 갖는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행사하는 권한은 역사의 부정적 세력의 억압과 극복 안에서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사제적, 전례적 중재가 될 것이다.
일인칭으로 말씀하시는 하느님
7절에서 독서자의 선포는 하나의 예언자적 신탁으로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는 것은 그 의미나 형태에서 1,4ㄴ과 1,8에 나오는 하느님의 호칭(앞으로 오실 분)과 연결된다.
하느님께서 미래에 오시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 자체로,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세력들을 무찌르는 구세사의 결론이 되는데(19,11-16 참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천상 군대들과 함께 그들에게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19,14 참조).
이 궁극적인 승리는 그분과 합류한 교회 공동체의 업적이기도 하며, 그 승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모든 이에게 드러날 것이다. 공동체는 이를 온전히 수용하며 기도의 맥락에 합치시킨다(예, 아멘).
8절에서 다시 독서자가 나서서 마무리한다. 하느님께서 일인칭으로 말씀하신다는 사실에서 그 장엄함은 절정에 이른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알파요 오메가”, 곧 창조적, 구원적 활동의 시작과 끝이신 분으로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분”, 곧 순간순간 창조와 당신께서 이끌고 계신 구원을 시작하셨고 마무리하실 분으로서 당신의 권능을 온전히 행사하시는 분으로 드러난다.
이 단락에서 분명히 드러난 전례적 대화는 교회 공동체로 하여금 묵시록의 첫 번째 부분의 근본적인 주제가 될 속죄의 정화와, 두 번째 부분의 주제가 될 능동적 역할의 식별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대화의 형식은 결문에서(22,6-21)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 이성근 사바 신부 - 1991년 사제로 수품, 교황청 성서대학을 졸업했다.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이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이성근 사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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