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구약성경의 열두 주제5: 성경의 삼대 절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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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5-22 | 조회수5,447 | 추천수1 | |
[구약성경의 열두 주제 05] 성경의 삼대 절기
이스라엘의 기후는 우리나라와 달리,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본격적으로 비가 오는 시기는 겨울이다(아가 2,11 참조).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건기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뜨거운 여름이면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가 그리운 나라. 오랫동안 비 구경을 못하다가, 가을에 우산을 쓰면 느낌이 언제나 새로웠다.
내가 그곳에 사는 동안에는 예전에 없던 버릇도 생겼다. 비오는 날이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산 위로 토닥토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메마른 땅에 가서야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임을 알았으니, 당연한 일상도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것이다.
이국의 삶은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그만한 매력도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매력은 성경의 절기들을 평소 생활에서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하는 삼대 명절이 있었고, 예수님도 그 규정을 지키셨을 것이다. 지금도 ‘파스카 축제’, ‘주간절’,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은 온통 잔치 분위기다. 우리가 한가위에 귀성 행렬로 고속도로를 메우듯, 이스라엘도 삼대 명절에는 일가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성경에 규정된 이 명절들은 모두 탈출기에 얽힌 역사적 의미를 띠었고, 우리나라 한가위처럼 기후와 농경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어
신명 11,14은 이스라엘이 주님 계명을 충실히 지킬 경우, 하느님께서 “제때” 비를 주시어 풍성한 소출로 축복하시리라 약속한다. 곧, 이스라엘이 누리는 ‘비의 축복’은 그들의 충성도에 달려 있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경우, 주님의 진노가 타올라 비를 얻을 수 없다(신명 11,16-17). 그래서 엘리야 시대에는 타락한 이스라엘에 가뭄이 예고되었고(1열왕 17,1), 아모 4,6-8에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제때” 내리는 비로 언급된 신명 11,14의 “이른 비”는 ‘가을비’다.
이스라엘은 일곱째 달인 ‘티시레이’에 새해가 시작된다(우리 달력으로 대략 9월 말에서 10월초에 해당). 곧,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내리기에 ‘가을비’가 “이른 비”다. ‘가을비’는 건기 동안 딱딱해진 토양을 열어 파종을 돕는다.
묵은해가 새해로 바뀌는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예부터 “초막절”을 지냈다(탈출 23,16: “연말”과 “추수절”참조). 그래서 우기는 “초막절”을 기점으로 시작되고, 12-2월에 장마가 된다. 3-4월에는 ‘봄비’로 “늦은 비”가 온다. 봄비가 온 뒤에는 건기가 시작되므로 ‘마지막 비’라는 의미다.
“주님의 축제”이자 “추수절”인 “초막절”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절기로서(레위 23,40; 신명 16,14), “주님의 축제”라고도 불렀다(레위 23,39).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유랑하는 동안 “초막”을 짓고 살았던 데에서 기원했다(레위 23,43). 하느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백성들을 보호하셨음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지금도 유다인들은 집 근처에 초막을 짓고, 이레 동안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초막절에는 온 이스라엘이 모여 ‘주님의 율법’을 봉독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어서(신명 31,10-12),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초막절의 여덟째 날을 ‘심핫 토라(토라의 기쁨)’로 지내왔다. 그래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조금씩 읽어온 모세오경을 마무리하고, 창세기부터 새로 봉독을 시작한다.
초막절은 또한 농사 절기로서, “추수절”로도 불린다(탈출 23,16). 한 해 동안 땀 흘린 결실을 거두는, 우리나라 한가위와 의미가 같다(신명 16,13). 실제로 이스라엘이 광야에 살 때는 ‘천막’을 쳤겠지만, 가나안을 정복한 뒤 농경사회가 되면서 ‘초막’으로 바뀐 것 같다. 수확으로 바쁜 농사꾼들이 들판에 ‘초막’을 짓고, 임시 거처처럼 사용했다(이사 1,8: “초막” 참조). 여기서 온 이스라엘이 초막절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시편 126,6 참조).
게다가 우기가 시작되니만큼, 여덟째 날에는 비를 기원하는 기도도 바친다. 그래서 즈카르야는(14,17) 어느 씨족이든 초막절에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 선포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목마른 자들은 나에게 오라.’고 초대하신 배경도 이해할 수 있다(요한 7,37). 우기 동안의 비가 중요한 이스라엘에는 예부터 빗물 저장고가 발달했으며, 메마른 건기에는 시편 42,1“(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이 저절로 묵상이 된다.
파스카축제
“파스카”는 해마다 봄, 늦은 비가 내리는 “니산”달(3-4월)에 지내는 축제다. “니산”이 성경에 “첫째 달”로 나오는 만큼(탈출 12,2; 에스 3,7), 한 해의 시작으로 삼으라는 규정(탈출 12,2)도 있다. “파스카”는 히브리어로 ‘페사흐’, 아람어로 ‘파스하’라 한다. 우리말 성경은 라틴어 발음에 맞추어 “파스카”라고 번역했다. ‘페사흐’는 ‘건너뛰다’라는 뜻이므로, “파스카 축제”는 한자로 “과월(過越)절”이다. 어린양(염소)의 피를 문에 바르자,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탈출 12,12-13).
“파스카 축제”는 또 “무교절”이라고도 하는데, 이집트에서 급히 나오느라 누룩을 넣지 못하고 빵을 만들어 먹었음을 기념한다(탈출 12,15-20). 이것은 이집트 종살이를 상징하는 “고난의 빵”(신명 16,3)이다. 무교절은 이레 동안 지내는 축제로서, 본디 파스카보다 하루 늦게 시작했다(레위 23,5-6). 그러나 나중에는 같은 날짜로 합쳐지게 된다(에제 45,21; 마르 14,12 등).
파스카 축제는 처음에 가족 단위로 지냈으나(탈출 12,21), 기원전 7세기에 요시야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를 집중시킨 뒤 국가 축제로 탈바꿈한다(신명 16,2.7; 2열왕 23,21-23). 유다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서기 65년에 파스카 제사를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이가 삼백만 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유다전쟁사」, 2,280쪽). 과장된 숫자임을 감안해도, 많은 인파라는 것은 분명하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때는 니산달 15일로서 파스카 축제 첫날이다. 그래서 그 전날 저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은 ‘파스카 만찬’이다(마르 14,12). 이 만찬은 우리가 미사 때 지내는 성찬례의 기원이 된다. 요한복음만(19,14)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날을 파스카 양을 잡는 니산달 14일로 기록했다. 아마 요한복음은 파스카 만찬보다, 주님께서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의미를 더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1코린 5,7참조).
농경적으로는 “무교절”에 보리 추수를 시작한다. “무교절”, 곧 ‘누룩 넣지 않은 빵의 축제’라는 말에도 추수의 어감이 내포되어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 ‘보릿고개’가 있었던 것처럼, 고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농부의 주식은 보리였으며, 판관 7,13은 이스라엘 병사들을 “보리빵”에 비유한다. 무교절 즈음에도 가난한 이들은 보리빵을, 부유한 이들은 밀빵을 먹었다고 하는데, 밀 가격은 보리 가격의 두 배였다(2열왕 7,1참조).
무교절 뒤에는 건기에 접어들므로, 이스라엘은 예부터 비를 대체할 수 있는 ‘이슬’을 귀히 여겼다. 이슬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상징이다(창세 27,28; 신명 33,28).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특히 습기가 많아, 밤 기온이 떨어지면 포화된 공기가 이슬로 뿌려져 농경에 도움을 준다. 여기서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선포했던 심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데(1열왕 17,1), ‘비는커녕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무교절 첫날에 이슬을 기원하는 기도를 바친다.
주간절
파스카 축제 뒤 ‘오십’일이 지나면 “주간절”이다. 무교절에 보리 첫 단을 바친 뒤부터 날수를 센다(레위 23,15-16; 신명 16,9). 그래서 한 주를 구성하는 ‘이레’가 ‘일곱’번 지난 ‘사십구일’ 뒤에 걸리므로, “주간절”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밀을 추수한다.
바빌론 유배 뒤에는 “주간절”이 “오순절”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2마카 12,31-32; 토빗 2,1), 신약에도 “오순절”로 나온다(사도 2,1). “오순”이라는 한자는 ‘오십’을 뜻한다.
구약에는 주간절을 역사적으로 풀이해주는 구절이 따로 없고, 신명 16,12만 이스라엘이 이집트 종이었음을 기억하는 명절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다가 제2 성전기 뒤부터 모세가 ‘토라’, 곧 ‘모세오경’을 받아온 사건을 기념한다는 전승이 생겼다. 이 전승은, 시나이 산 계약 체결이 “셋째 달”에 이루어졌다는 탈출 19,1에서도 힘을 얻는다. 무교절이 첫째 달 중순부터이니, 셋째 달은 대략 오십일 뒤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모세가 토라를 받은 것처럼, 신약시대에는 성령강림이 있었다(사도 2,3-4).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다양한 언어로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요엘3,1을 실현한다.
초막절과 무교절이 농사 절기에 역사적 의미가 더해진 명절임을 생각해 볼 때, 주간절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햇곡식을 바치는 주간절은 구약성경에 “수확절”(탈출 23,16) 또는 “맏물의 날”(민수 28,26)로도 불렸다.
절기의 완성
이스라엘의 절기는 첫째 달의 “과월절”과 일곱째 달의 “초막절”이 한 해의 쌍봉을 이루며, “주간절”이 그 사이를 이었다. 고대에는 예루살렘에만 성전이 있었으므로, 멀리 사는 이들은 삼대 절기에 성전을 순례했다. 이 성전은 서기 70년에 로마가 무너뜨리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으로 성전을 다시 세우셨다(요한 2,21).
초막절에는 목마른 이들을 초대하시고, 파스카 축제 때는 몸소 희생 제물이 되시어 성전의 제사를 한 번에 이루셨다. 그리고 승천하신 뒤에는 성령을 보내시어 구약의 절기들을 모두 완성하셨던 것이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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