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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23: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하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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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5-24 조회수3,524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3)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하바 2,2)


예언, 성령으로 재해석되고 생명력 얻어



성령의 영감을 받아 복음서를 집필하는 마태오 복음사가, 카라바조 작.


예언자들은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있지만, 거의 안 썼습니다. 예언서들은 서서히 형성되었습니다. 예언자들에게서 시작하여 예언서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예언자들의 활동, 예언의 문서화, 예언서 편집의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예언자들의 활동입니다. 예언자들은 먼 훗날 우리가 읽으라고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본래 예언자들은 책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말을 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기록될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현재를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후에 예언이 문서화되고 성경에 속한 책들이 되면서 그 말씀이 선포된 구체적 상황에서 어느 정도 풀려나고 모든 이들을 위한 말씀이 되었다 해도, 처음 예언자들이 말을 한 것은 추상적인 이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한 시대, 특정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향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는 말은 특정 시대나 사람들과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진술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기원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아모스 예언자가 이 말을 했을 때에는 특수한 어떤 상황을 지칭하여 한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보다 특히 예언서를 읽을 때에는 각 예언자들의 시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언제나 외세에 시달려온 이스라엘의 역사 때문에, 국제 정세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그들의 메시지가 역사와 깊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 배경을 아는 것은 예언자들이 어떤 말을 한 의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말들이 오늘 우리의 세상을 위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예언자들의 말은 처음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말들이었고, 그 말들이 지금도 현실성을 지니는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온 하느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들의 소명담이나 문학적으로 뛰어난 일부 본문들은 처음부터 글로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둘째 단계는 예언의 문서화입니다. 예언자들 자신이 글을 남겼다는 기록은 별로 없지만, 예레미야서 36장의 경우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그의 말들을 받아 적게 했음을 전해 줍니다.

말을 기록하는 것은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하바쿡서 2장 2절에서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고 하시는 것은 그 환시가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위하여 기록해 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자가 선포한 말들 가운데 현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의미가 있을 말들이 기록됩니다.

예언자 자신이 직접 기록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의 제자들이나 그의 전승을 후대에 전달한 이들이 예언자들의 말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예언자가 평생 했던 모든 말을 다 기록할 수는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서화 단계는 선택을 전제합니다. 녹음기처럼 모든 말을 다 적어두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기록한 이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많은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말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그 예언을 읽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예언이 문서화되면서 예언의 말씀은 예언자가 처음 그 말을 발설했던 그 구체적 상황에서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 특정한 상황을 위한 것이었던 그 말이 다른 상황, 다른 독자, 다른 청중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예언서의 편집입니다. 처음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었던 예언자의 말들이 점점 큰 덩어리로 뭉쳐져서, 어떤 주제나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하는 모음집이 되었다가 하나의 책을 이루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예언서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모습이 되기까지 계속 변화되어 갑니다. 후대의 편집자들은 때로는 예언자들의 말에 많은 내용을 덧붙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서의 경우, 40-66장은 모두 후대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또 때로는 작은 손질을 가하여 기록된 예언을 변형시킵니다.

이러한 작업은 예언을 변질시킨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그저 잘 기록해서 흠 없이 보존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이었기에, 그 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돼야 했습니다. 그 말씀이 과거 한 시점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말씀이기에, 냉동하거나 박제해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를 위하여 재해석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그 말씀은 예언자가 처음 발설한 그 상황과는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현실성을 지니게 됩니다.

성경에 들어 있는 모든 말씀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면 예언서가 변화를 겪어온 과정 역시 모두 성령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언서를 읽을 때, 후대에 덧붙여진 부분들을 예언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예언자 한 사람에게 매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도로 그 말씀을 재해석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 안에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역사 안에 펼쳐 놓은 것입니다. 예언서는 오늘 우리를 위한 말씀이고, 우리를 위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24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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