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46) 카르멜산
엘리야 예언자가 우상 숭배 물리쳐
- 아합 왕을 꾸짖는 엘리야. 콘스탄티노플 귀족 레오의 성경에 있는 세밀화, 940년경, 바티칸 도서관.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카르멜산은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서 할당한 유다 지파의 마을이다(여호 15,55). 카르멜산은 지중해 쪽으로 돌출해 있는 가장 큰 봉우리 중 하나로 교통을 가로막는 천연 장애물이었다.
카르멜산은 고대 이스라엘은 물론 근대에도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 카르멜산은 이스라엘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하이파 시가 있는 지중해 하이파 만으로부터 시작돼 지중해 연안을 끼고 카이사리아까지 길게 뻗은 25㎞가량의 산맥이다. 카르멜산에 올라보면 동쪽으로 이즈르엘 평원이, 서남쪽으로 샤론 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카르멜 산은 팔레스티나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푸른 숲으로 우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지금도 언덕 곳곳에는 동굴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예로부터 은신처로 많이 이용됐다.
“그들이 카르멜 꼭대기에 몸을 숨겨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내어 붙잡아 오고 그들이 내 눈을 피해 바다 밑바닥에 숨더라도 내가 바다 뱀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물게 하리라”(아모 9,3).
카르멜산은 고대로부터 종교적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산이다. 그런데 카르멜산이 성경에서 중요한 장소로 언급되는 것은 엘리야 예언자 때문이다. 기원전 860년 오므리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 아합 왕이 이방국 시돈 왕의 딸 이제벨과 정략 결혼을 통해 국력을 크게 하려고 했다. 이제벨 공주는 결혼하면서 시돈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 신앙을 들여와 북이스라엘에 퍼뜨렸다. 부인 이제벨의 영향으로 아합 왕 역시 바알을 섬기며 우상 숭배에 빠진다. 왕궁 안에 바알과 아세라 상을 들일 정도로 타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 예언자가 나타난다. 엘리야는 아합 왕을 만나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하고 가뭄을 예언한다.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1열왕 17,1).
그 후 3년이 흘러 기근이 절정에 달하자 엘리야는 여전히 바알을 섬기던 아합 왕에게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카르멜산으로 모으고,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도 함께 모아달라고 청한다(1열왕 18,19).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카르멜산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의 거짓 예언자 450명ㆍ아세라 예언자 400명과 대결을 벌였다. 이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엘리야는 새로운 종교 질서를 세웠으며, 종교적 위기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였다(1열왕 18,20-40).
사울 왕은 아말렉 족속을 물리치고 카르멜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튿날 사무엘이 아침 일찍 일어나 사울을 만나러 나서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전하였다. ‘사울 임금님이 카르멜로 가시다가 자신의 기념비를 세워 놓으시고, 그곳을 지나 길갈로 내려가셨습니다’”(1사무 15,12).
지금도 카르멜산에 가면 1868년 세워진 가르멜 수도회 무흐라카(불의 제단) 수도원을 들르게 된다. 초대 교회 때부터 이곳에 은수자들이 들어와 수도 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르멜 수도원의 기원이 됐다. 엘리야 예언자를 존경하는 무슬림들도 이곳을 찾아와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전쟁으로 19세기 초반 남자 가르멜 수도원이 들어와 지금까지 성지를 보존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3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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