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5)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호세 3,5)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 사랑은 ‘일편단심’
- 호세아 예언자를 그린 이콘 작품.
호세아는 쉽지 않은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어렵게 아내를 사랑해야 했던 그는 이 결혼 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한 것도 기원전 8세기입니다. 아모스와 비슷한 시기이지만 조금은 더 늦은 시기였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 더 임박한 때였습니다. 멸망을 직접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가 주로 사회 불의를 비판했다면 호세아는 종교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고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호세아를 부르십니다.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들을 맞아들여라”(호세 1,2). 2장과 3장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어, 호세아가 아내와 결혼한 다음 그 아내가 호세아를 배신하고 다른 애인들을 쫓아갔다고 말합니다. 어쨌든 호세아의 아내는 호세아에게 신의를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을 주는 사람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호세아에게, 끝까지 찾아가 그 아내를 다시 데려와 사랑해 주라고 하십니다. 호세아는 은과 보리를 주고 다시 그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데려옵니다.
이러한 행위의 의미는 호세아서 3장 1절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 주어라.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 돌아서서 건포도 과자를 좋아하고 있다.” 여기서 그 여자의 배신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주님이신 하느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러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호세아와 그 아내의 사랑 역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첫사랑 시기는 이집트를 탈출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때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맺어진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탈출 때에 주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주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사랑에 응답하는 젊은 여인과도 같았습니다(2,17).
그러나 그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양식과 물, 양털과 아마, 기름과 술을 주는 내 애인들을 쫓아가야지”(2,7) 하며 주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하는 시기였습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그렇게 다른 남자들을 따라간 것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나타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주님이 아니라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풍산신 바알이 그들에게 먹고 마실 것, 입을 것을 마련해 준다고 믿으며 바알을 숭배했습니다. 바알이 폭풍우와 비의 신이니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바알에게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11,2)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가 그런 아내에게 깨달음을 얻게 하도록 징계의 시간을 갖게 했듯이(2,11-15), 이스라엘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사랑의 유대를 끊어 버린 후에는 징벌의 단계가 뒤따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서 곡식과 포도주를 거두시어 그것이 바알이 준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하느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11,5).
“그러나”(2,16) 호세아는 아내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다시 맞아들이며(2,21-25), 하느님 역시 이스라엘을 벌하시면서도 그를 애절히 사랑하시기에 다시 데려오십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죄 때문에 멸망할지라도, 하느님은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11,8) 그 이스라엘을 내버리지 못하십니다. 심판을 선고하시던 하느님이 여기서 돌아서십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11,8). 하느님은 분노를 거두시고 다시 이스라엘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이스라엘 편에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손을 뿌리치려 하지만, 하느님 편에서 그 꼭 붙든 손을 놓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내버릴 수 없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돌아오게 될 날을 이야기하는 호세아서 14장 2-9절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봅니다. 처음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바쳐야 할 회개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아시리아와 군마와 우상, 곧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그 말씀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고백이 뒤따르지 않습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호세아가 아내를 용서하고 데려왔듯이, 여기서도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14,5)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돌려 주님께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은 하느님 사랑의 주도권에 의해서입니다. 배반한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14,6).
[평화신문, 2015년 6월 7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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