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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엔 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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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08 조회수4,197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엔 게디


사해 서편 오아시스… 사울에 쫓기던 다윗 숨었던 곳



- 엔 게디의 들염소.


히브리어로 ‘엔’은 샘이고 ‘게디’는 들염소, 특히 새끼 염소를 뜻한다. 곧, 엔 게디는 ‘들염소의 샘’이다. 유다 광야의 한 오아시스로서, 사해 서편에 있다. 지금도 이백 미터 높이의 폭포로 물이 쏟아지기에, 광야에서 살지 못하는 동·식물들을 볼 수 있다. 이름에 걸맞게, 들염소가 가장 흔하다. 바위 틈에는 성경에 ‘오소리’로 번역된 ‘바위너구리’들도 많이 보인다(바위에 집을 마련하는 오소리, 시편 104,18 잠언 30,26 참조). 바위너구리는 유다 광야 오아시스뿐 아니라 갈릴래아 호수에도 산다. 영어로 ‘록 하이렉스’(rock hyrax)라 하며, 히브리어로는 ‘샤판’이다. 레위기와(11,5) 신명기에(14,7) 따르면, 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아 부정한 짐승에 속한다. 떼로 모여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며, 몸 길이는 오십 센티미터 정도다. 겉모습은 설치류를 닮았으나, 놀랍게도 동물들 가운데 코끼리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경계심이 많아, 인기척이 나면 바위 사이로 잽싸게 숨는다. 체온 조절을 하느라 일광욕도 자주 즐기는 흥미로운 짐승이다.

아가서의(1,14) 여인은 자기 연인을 ‘엔 게디 포도밭의 헤나 꽃송이’에 비유했다. 우선, ‘엔 게디 포도밭’은 자신에 대한 은유다. 곧, 여인은 스스로를 농장에 견준 것이다. 이는 여인을 ‘정원’에 빗댄 4장12절 내용과 비슷하다. 이 비유들은 자식 낳는 여인과 열매 맺는 농장의 공통점에서 비롯됐다. 고대에는 ‘헤나’로 빨간 염료를 만들었으며, 화장품으로도 사용했다. 헤나는 굵고 하얀 꽃으로 피며, 향기는 장미 꽃 같다. 유목 여인들은 몸에서 염소 냄새를 없애려고 겨드랑이 부근이나 머리에 헤나 꽃을 꽂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가서의 연인은 포도밭(여인)에 안긴 헤나 꽃송이에 비유된 셈이다. 헤나는 3미터까지 자라며, 이스라엘에서는 지대가 낮은 곳에 주로 서식했다(요즘에는 찾기 어렵다). 엔 게디가 아가서의 한 배경으로 등장하기에, 엔 게디 폭포는 솔로몬 연인의 이름을 따서 ‘술람밋’(7,1)이라 불린다. 솔로몬은 전통적으로 아가서의 저자로 여겨져 왔다(3,7 8,11 참조). ‘술람밋’(슐라밋)은 ‘솔로몬’(쉴로모)의 여성형이므로, ‘솔로몬에게 속한 여인’으로도 해석된다.

일광욕하는 바위너구리(갈릴래아 호수 근처에서 촬영).


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유대 고대사 9,7), 이스라엘에서 가장 질 좋은 대추 야자와 귀한 향수의 원료가 되는 발삼이 엔 게디에 자란다고 기록했다. 집회서는(24,14) 지혜가 성장하는 모습을 엔 게디의 야자나무에 비긴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숨은 곳도 엔 게디 산성이었다(1사무 24,1). 다윗이 동굴 안에 있을 때, 사울이 들어와 뒤를 보았다(4절). 그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자른 뒤, 주군이신 임금님을 죽일 의도가 없음을 밝혔다. 사울은 주님께서 기름으로 성별하신 이였기 때문이다(7절). 당시 이스라엘에는 기름부음 받은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울이 길보아 전투에서 쓰러졌을 때, 다윗은 같은 이유를 들어 사울을 죽였다고 보고한 자를 처단했다(2사무 1,12-16). 사울의 ‘부탁’으로 그를 죽였다고 알린 보고자는(10절), 다윗의 신임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결한 사울을 자기가 죽였노라 거짓 보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필리스티아에게 목숨을 잃는 치욕을 피하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사무 31,4-5). 게다가 그 보고자는 이스라엘의 숙적인 아말렉 사람이었기에, 사울이 죽여달라고 청했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서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이를 죽였다고 스스로 인정한 아말렉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엔 게디의 바위 산. 엔 게디 정상에서 찍은 사진. 아래쪽으로 야자나무 농장이 보인다.

 

 

엔 게디는 ‘성전 생명수’ 신탁에도(에제 47,1-13) 등장한다. 에제키엘은 회복의 시대에,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사해(死海)를 살아나게 하리라 예언한다(염도가 너무 높아 생명체가 살기 어려우므로, 사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다가 풍요롭게 부활하면, ‘엔 게디에서 엔 에글라임’까지 물고기가 많아져 어부들이 모여들게 될 것이다. ‘엔 에글라임’은 ‘송아지 두 마리의 샘’이라는 뜻이며, 사해 동편으로 추정된다. 사해 서쪽인 엔 게디와 마주보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엔 게디에서 엔 에글라임까지’는 사해 전체를 일컫는 표현이 된다. 에제키엘이 예언한 이 성전 생명수 신탁은, 나중에 예수님을 통해 빛을 발한다(요한 2,21 4,14). 곧, ‘성전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그 사람 안에 샘이 되어 영생을 누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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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7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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