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함께 읽는 성경] 현실 성경 공동체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오늘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reality), 성경(Bible), 공동체(community)의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한다. 성경 읽기에서 이 요소들은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서로 연결되고, 이들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통합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이 세 요소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날 하느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를 듣게 된다. 따라서 현실, 성경, 공동체의 세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를 놓치게 되면, 성경 해석은 진전하지 못하고 위기에 처하게 되며 성경은 자신의 역할을 잃게 된다.
현실
현실은 성경을 읽는 독자가 살고 있는 실제 삶의 상황(real-life situation)이고 주변 세계이다. 독자는 자신의 다양한 실제 삶의 문제들과 함께 성경을 읽는다. 따라서 독자의 현실 삶은 성경 본문을 읽기에 앞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전(前)-텍스트(pretext)이다.
성경 읽기의 전-텍스트인 독자의 현실은 인생과 신앙의 다양한 실존적 체험과 여정 뿐 아니라 독자가 살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태적 상황을 포함한다. 성경의 독자는 현대 세계의 다양한 문제들과 직면하면서 현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의 전망을 모색한다. 특히 오늘의 현실에서 지역적인 차원에서나 글로벌 차원에서 제기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태의 다양한 문제는 인간 세계와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의한 양극화 현상, 가난의 구조화, 제국주의적 정치 체제와 군사주의 등은 매우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기후 변화는 홍수, 가뭄, 이상 고온 등으로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무분별한 산림 벌채, 사막화 현상, 생물 다양성의 상실로 생태계는 위기에 처해 있다. 깨끗한 물은 부족하고 석유는 고갈되어 간다. 이러한 현실에서 독자는 성경에서 이 현상들의 근본 이유와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의 규범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성경은 삶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거울(mirror)이다. 독자는 성경에서 자신의 삶의 현실이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독자는 성경을 친숙하게 읽게 된다.
성경
현실이라는 전-텍스트를 살고 있는 독자는 성경 본문(text)을 읽는다. 성경 해석을 위하여 학문적 성경 연구인 주석(註釋, Exegesis)이 필수적이다. 성경 연구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과제는 성경 주석, 즉 성경 본문의 해석(解釋)이다. 해석은 본문의 의미를 이해(理解)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석의 과제는 성경 본문의 이해이다. 이와 같이 성경 주석은 성경의 해석을 위한 학문적, 비평적, 방법론적 연구이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주석은 적절한 역사적, 문학적, 신학적인 방법을 모두 사용하여 성경을 그 배경과 시대 안에서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성경 읽기의 다양한 방법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가지는 국제적 특성상 우리의 성경 읽기 방법론은 서양 성서학계와 대화해야 하며 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 방법론들의 소개와 적용과 관련하여 다음 몇 가지 점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서양 성서학계에서 통용되는 방법론들이 그저 기계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운 방법론이 소개될 경우, 지나치게 복잡하고 난삽한 방법론적인 개념과 용어들 때문에 우리 독자들의 성경 읽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불행히도 많다. 안타깝게도 성경 읽기를 위한 새로운 방법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성경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석의 방법론은 그야말로 성경 텍스트를 읽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구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경 읽기의 방법론은 독자로 하여금 더욱 정확하게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고 더욱 쉽고 즐겁게 텍스트를 읽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공동체
신앙 공동체는 성경 읽기와 해석의 맥락(context)이다. 독자는 공동체가 간직한 신앙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공동체 가운데에 살아 계신다. 대안적 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의 신앙은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맥락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성경 읽기는 공동체의 활동이고 신앙의 행위가 된다. 독자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수세기 동안 수행해온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거듭 재창조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을 가진다. 신앙은 그저 나 혼자 예수님을 잘 믿어 나중에 천당에 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앙을 개인의 일로 만들어 버리는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풍요로운 차원을 축소시키고 제한하는 것이다. “세속화 과정은 신앙과 교회를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64항).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에게 성경의 사회적 비전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초대한다. 즉 신앙은 우리 안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열정을 다시 일깨우고, 대안적 질서와 가치를 위해 투신하도록 초대한다. 이 투신은 사회 정의를 위한 행동과 연대 안에서 구체화된다. 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의 사회 참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복음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국 이 사회 참여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실현된다. “우리의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178항).
* 송창현(미카엘) 신부는 1991년에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침, 2015년 6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송창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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