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성경의 세계: 팔레스티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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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6-23 | 조회수4,546 | 추천수1 | |
[성경의 세계] 팔레스티나 (1)
가나안 땅의 또 다른 이름은 팔레스티나다. 필리스티아인의 땅이란 뜻이다. 이들은 다윗시대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맞섰던 민족이다. 그리스 남쪽에서 바다를 건너와 정착했고 끈질기게 괴롭혔다. 소년 다윗이 돌팔매로 눕혔던 골리앗은 필리스티아 군인이었다. 유다인은 블레셋 족이라 했다. 기원후 1세기 로마는 유다인의 독립운동을 분쇄한 뒤 이곳을 팔레스티나라 부르게 했다. 이제는 유다인 땅이 아니란 의미였다. 그리고 그들을 추방했다.
영어는 팔레스타인이다. 1993년부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곳을 지배하던 영국은 유대인 이주를 묵인한다. 그들이 현지인과 갈등을 일으키자 유대인 거주를 유엔에 상정했다.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나누는 결의안을 채택한다(1947년). 유대인은 환영했지만 아랍인은 분노했다.
당시 팔레스티나 거주 유대인 소유 땅은 7%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전체의 절반을 준다는 것이 결의안 골자였다. 1948년 영국은 팔레스타인 통치를 접고 철수한다. 유대인은 유엔 결의안에 근거해 땅을 차지하고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1948년 5월 14일). 팔레스티나 거주 아랍인과 인근 국가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며 반발했다. 1차 중동 전쟁이다.
전쟁으로 70만이 넘는 아랍인이 이스라엘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아랍국가 거주 80만 유대인 중 60만이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20만은 미국과 유럽으로 떠났다. 이후 팔레스티나는 지중해 동부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이곳에 속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그리고 요르단과 시리아다. 분쟁은 여전하지만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 모두 신성시 하는 땅이다. 회교도들은 구약의 모세오경을 경전으로 받들기에 성지로 여긴다. 예루살렘은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팔레스티나는 해발 800m이상 되는 북부지역과 바다보다 400m가량 낮은 남부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지역 간 거리는 23km 정도다. 해수보다 낮은 남쪽에는 강물이 내려와 고인 사해(死海) 호수가 있다. 요르단 강 종착지도 여기다. 요르단은 ‘단에서 흐르다’는 뜻이다. 전체 길이는 260km며 갈릴래아 호수에서 사해까지는 105km다.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기에 호숫물은 소금기가 매우 높다.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낮은 땅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6월 21일 연중 제12주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팔레스티나 (2)
팔레스티나 기후는 변화가 심하다. 북쪽은 온대성 기후로 분류되지만 사해가 있는 남쪽은 열대성 식물이 자란다. 그런 까닭에 통상 두 계절로 나뉜다. 긴 여름과 겨울이다. 봄, 가을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일교차는 심해 한낮과 한밤의 기온 차가 40℃까지 갈 때도 있다. 수난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대사제 관저로 잡혀가신다. 궁금해진 베드로도 뒤따라갔는데 사람들이 안뜰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루카 22,55). 4월인데도 추웠던 것이다.
겨울엔 차고 건조한 동풍이 헤르몬 산에서 갈릴래아 쪽으로 분다. 가끔은 회오리바람으로 바뀌어 거센 풍랑이 되기도 한다(마태 8,23). 일 년의 절반은 전혀 비가 오지 않는 건기다. 겨울에만 비가 내린다. 우기(雨期)는 10월부터 시작되며 4월 초에 끝난다. 가끔은 폭우가 되기도 한다. 기초가 부실한 집은 떠내려갈 만큼 순식간에 홍수를 이루기도 한다(마태 7,27).
로마인이 들어오기 전에는 가나안이라 불리었다. 이곳을 점령한 이스라엘도 그렇게 불렀다. 이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가 차례로 정복했지만 공적인 지명은 늘 가나안이었다. 로마는 700년 이상 이곳을 다스렸다. 전성기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동로마 시대였다. 황제의 모친 헬레나 황후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찾아냈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다. 이후 팔레스티나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로 바뀌었고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황제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원이 넘쳐났고 인구도 급증했던 것이다. 하지만 7세기 초에는 회교도가 장악한다. 636년에 일어난 야르무크(Yarmouk) 전투의 패배로 동로마는 손을 뗐던 것이다.
이후 유다인은 팔레스티나에 들어가지 못했다. 11세기가 되자 유럽인의 성지순례가 시작되었고 성지를 되찾자는 십자군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한때 십자군은 성공을 거두어 팔레스티나에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며 건재했으나 13세기 말에 사라지고 만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유다인 지도자 헤르츨(Herzl)은 시오니즘을 주창한다.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자는 운동이었다. 이후 유엔에서는 팔레스티나에 아랍인 국가와 유다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 자로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했다. 하지만 아랍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스라엘 지역을 침범했다. 중동전쟁의 시작이다. 성경은 왜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명 26,9)이라 했을까? 현실에는 그런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시일 것이다. [2015년 6월 28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성경의 세계] 팔레스티나 (3)
기원전 13세기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을 시도한다. 그 무렵 또 다른 민족도 이곳에 정착을 시도하고 있었다. 필리스티아인이다. 그리스 남쪽에서 바다를 건너와 가나안 해변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들이 세운 다섯 도시가 훗날의 가자, 갓, 아스돗, 아스클론, 에크론이다(여호 13,3). 갓은 골리앗의 고향이었고(1사무 17,4) 가자는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유다인은 블레셋이라 했다. 블레셋은 필리스티아를 히브리어로 발음한 것이다. 현재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에선 블레셋를 모두 필리스티아로 바꿨다. 따라서 블레셋이란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히브리어 발음보다 원래 발음인 필리스티아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야훼란 말을 생략한 것도 같은 이유다. 히브리어 발음인 야훼를 우리말 주님으로 모두 바꾼 것이다.
필리스티아를 히브리어 성경에선 PLST로 표기했다. 고대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고 모음이 없다. 읽고 발음하는 것은 오랜 습관으로 후대에 물려줬다. 그러다 8세기부터 마소라 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히브리 성경의 정확한 읽기를 위해 모음 기호 체계를 개발했다. 점을 찍어 모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 표기에 따라 블레셋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마소라 표기를 로마자로 적으면 p?leset 이다. 발음은 플레셑 정도일 것이다. 암튼 이것이 블레셋이 되었다.
팔레스티나는 예수님께서 탄생한 곳이기에 성지(聖地)가 되었다. 이슬람교도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으로 여겨 성지로 받아들였다. 지구 상 그 어떤 곳보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곳이 된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세 대륙이 교차한다. 오랜 세월 대국의 장사꾼(隊商)과 정복자들이 지나간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팔레스티나는 할 말이 많은 땅이다.
로마의 지배를 벗으려는 유다인의 시도는 처절했다. 1차 독립전쟁은 66년 시작해 70년 9월 끝난다. 결과는 예루살렘 파괴였다. 2차 독립전쟁은 132년 시작해 135년 끝난다. 승리한 로마는 더 이상 유다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나안 대신 팔레스티나란 지명을 사용했다. 이제는 필리스티아인의 땅이란 의미였다. 352년 유다인은 또다시 티베리아스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되었다. 이후 저항운동은 없었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는 780만이다. 8할이 유다인이다. [2015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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