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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 이스라엘 이야기: 싸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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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09 조회수4,194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싸리나무


박해 피해 떠난 엘리야에게 쉼터 되어준 위로의 상징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내 식물원서 촬영한 싸리나무 모습.


이스라엘은 광야에 싸리나무가 드문드문 자란다. 가장 남쪽인 네겝도 마찬가지다. 광야에서 거의 유일한 그늘이라 볼 수 있는 싸리나무는 엘리야를 떠올린다. 그는 카르멜 산에서 수백 명의 바알 예언자들을 꺾어, 야훼 신앙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업적만 떠올릴 뿐, 어떤 고통과 좌절을 겪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엘리야는 최고 권력자로부터 휘몰아친 핍박을 피해 북왕국을 떠나야 했는데, 싸리나무가 그에게 잠시 쉼터가 되어 주었다. 나무 아래에서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 엘리야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며, 우리는 각자 인생의 무게와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배운다.

카르멜 사건 뒤 이제벨 왕후는 복수를 다짐하고, 엘리야는 피난길에 올랐다. 브에르 세바에서도 한참 떨어진 광야에 이르러서야, 싸리나무 밑에 몸을 눕힌다(1열왕 19,2-4). 싸리나무는 일명 빗자루 나무다. 작고 메마른 관목이라, 큰 그늘이 되지는 못한다. 전승에 따르면, 하가르가 이스마엘을 놓아둔 덤불도(창세 21,13) 싸리나무였다고 한다. 엘리야가 그 아래 누워 한숨을 돌릴 때, 심적 부담과 고통이 그를 압도해버렸다. 왕실과 대립해야 하는 고통, 무겁게 내리누르는 삶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죽고 싶었다(1열왕 19,4). 곧, 광야의 싸리나무 한 그루는 엘리야의 고독을 그대로 투영해 준다.

사실 이제벨 손에 죽으나, 하느님이 목숨을 거두시는 것이나, 죽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엘리야는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절대자로부터 결정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깨고 싶지 않은 잠에 빠져든 뒤, 한 천사가 그를 깨워 빵과 물을 먹게 한다(5절). 그는 주님이 보내신 사자였는데, 굳이 천상의 천사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 과객이 요깃거리를 제공한 것은 엘리야에게 힘을 주려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다시 사십 일을 걸어 호렙 산으로 간다. 버스로는 네겝 광야에서 호렙까지 여섯 시간 꼬박 소요된다. 호렙은 모세가 하느님을 만났고(탈출 3,1-6)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은 시나이 산이다(신명 5,2 등). 엘리야는 이 최초의 장소로 되돌아가, 예언직을 내려놓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이 의도하신 목적지는 아니었는지, ‘네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느냐?’(1열왕 19,9.13)고 두 번이나 물으신다. 그리고 다 포기하고 찾아온 엘리야에게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다. 처음에는 바람과 지진, 불이 일었으나 그 안에 계시지 않았다. 그 뒤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로 그 안에 계셨다. 주님이 다가오시자 엘리야는 따지듯, 속에 쌓아둔 것을 쏟아낸다. ‘이스라엘이 계약을 저버렸으며, 예언자들을 죽여 자기만 살아남았다’고(14절).

호렙(시나이) 산 전경.

 

 

어떤 때는 마음에 담아둔 말만 토해내도 고통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는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 극심한 가뭄에도 제단에 물을 부어준 백성의 진정은(18,34) 고려하지 않았다. 또 혼자 살아남았다고 말해, 이제벨을 피해 숨은 예언자 백 명은(4절) 셈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 한 이는 이제벨인데, 백성이 죽이려 한다고 과장한다(19,14). 아마 엘리야는 백성이 자신의 열정과 기준에 도달해 주지 못하자, 좌절했던 것 같다.

주님은 고뇌를 품고 호렙까지 온 엘리야의 푸념을 들어주셨다. 그를 예언자로 다시 파견하실 때는 아람 왕국 하자엘에게 기름을 붓게 해, 지평을 오히려 넓히셨다(15절). 후계자로는 엘리사를 선택해(16절), 부담을 나누게 하셨다. 예후를 북왕국 임금으로 세우는 임무도 주신다. 곧, 하자엘과 예후를 통해 잘못된 신앙을 휘두른 자들이 응징되리라는 예고였으며, 엘리사가 이 둘에게 기름을 붓게 된다. 엘리야는 불 마차로 승천해, 에녹과(창세 5,24) 성모님에 더불어 죽음 없이 하느님 곁으로 간 한 사람이 되었다(2열왕 2,1-18).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쉼터를 준 싸리나무는 위로의 상징이다. 주님이 엘리야에게 들려주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는 아주 세밀해서, 침묵에 가까운 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우리는 묵상 중에 하느님을 만나게 되나 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침묵 중에 뻗어가는 생각의 힘은 매우 강력한 것이다. 그 침묵 속에서 주님이 담아 주시는 깨달음 또한 매우 세차서, 종국에는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가 들었고, 또 우리가 듣는 주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아닐까?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9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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