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58) 게라사
예수, 더러운 악령을 돼지떼에게 보내
- 게라사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틴 시대 성당 유적의 모습.
게라사는 성경에서 ‘게라사인들의 지방’ 또는 ‘게라사인의 지역’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이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내렸을 때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떠나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속에는 더러운 영의 수가 많기 때문에 ‘군대’라고 불렸다. 예수님은 이 더러운 영들을 돼지떼에게 보내셨다. 그러자 2000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성경이 자세하게 전하고 있는 마귀와 돼지떼 이야기다(마르 5,1-20 참조).
이 기적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바로 게라사다. 게라사는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다. 데카폴리스는 ‘열 개의 성읍’을 뜻하는 말로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로마 시대에는 셈족에게 로마 문화를 퍼뜨리는 거점이었다.
데카폴리스 가운데 하나였던 게라사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자 게라사인들의 지역 주민 전체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 주십사고 요청하였다(루카 8,37 참조).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마르 5,20).
오늘날의 쿠르시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군대라는 이름의 더러운 영이 들린 자를 고쳤던 성경 속 게라사가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있는 오늘날의 ‘쿠르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성경에 언급된 게라사가 요르단의 야뽁강 북부에 위치한 ‘제라시’라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곳 요르단의 제라시는 거대한 로마 도시로 이 지역의 경제적 중심 도시였다. 중동 지역에서 발견된 로마 도시 중 가장 잘 보존된 제라시는 중동 지역의 폼페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제라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약 55㎞ 정도나 떨어져 있으므로 성경의 언급처럼 돼지들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로 빠지기엔 너무 거리가 먼 지역이다. 따라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자연스레 현재 쿠르시를 성경에 나오는 게라사로 여겼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의 일부 성지 순례객 중에는 예수님 저주를 받은 카파르나움보다 귀신을 몰아낸 기적이 일어나고 이방인들의 도시이자 복음이 전파된 게라사를 방문하는 데 더 의미를 뒀다. 이 기적을 기념하려 이곳에 수도원도 세워졌다.
한때 큰 교회가 15개나
게라사는 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흔적이 발견된, 30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또 그리스 도시로 기원전 332년쯤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도시가 세워졌고 이후 로마에 점령당했다. 이후 도시 발전은 4~7세기에 걸친 비잔틴 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됐다. 한때는 게라사에 큰 교회가 15개가 넘게 세워져 번창했다. 그러다 7세기에 페르시아와 아랍의 공격을 받아 도시는 파괴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8세기 중반에 있었던 대규모 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유적이 발굴돼 지금도 활발하게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행히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대부분 건축물이 보존돼 있다고 전해진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23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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