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59) 그발
여호수아가 밟아보지 못한 땅
성경을 영어로는 ‘바이블’(bible)이라 한다. 어원은 그리스어로는 ‘책들’을 의미하는 ‘타 비블리아’ (ta biblia)이다. 후에는 단순 명사인 ‘헤 비블리아’(he biblia)라는 말이 성경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명사가 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 강변에서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Papyrus) 줄기를 종이로 가공해 지중해 연안의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많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지중해 무역을 독점했던 페니키아인은 비블로스(Biblos)항을 통해 파피루스를 수출했다. 이런 까닭으로 파피루스는 수출 항구의 이름에서 그리스어 ‘비블로스’라고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예베일(Jebeil)에 해당하는 곳이다.
파피루스 수출 도시 ‘비블로스’
파피루스 수출로 유명했던 도시인 ‘비블로스’가 그발이다. 그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그발은 신석기 시대 후 사람들이 계속 거주해 온 곳으로, 페니키아 문명이 시작된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500년쯤이며, 기원전 1200년 후에는 페니키아 3대 항구도시 중에 하나로 크게 성장했다. 지금도 중세의 성과 고대 거주지를 비롯해 유적지 곳곳에 서로 다른 시대의 기원을 두고 있는 건축물이 도시의 역사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발은 ‘경계’, ‘가장자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시돈과 티로와 함께 페니키아 3대 도시국가로 언급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북쪽 40㎞ 지점의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다. 그발은 옛날부터 조선업이 발달했으며, 배를 수출하고 있었다. 그발 사람들은 우수한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술, 항해술 등 기술도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이곳은 돌과 재목을 다듬는 기술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솔로몬의 건축가들과 히람의 건축가들과 그발 사람들이 돌을 깎아 내고, 주님의 집을 지을 나무와 돌을 마련하였다”(1열왕 5,32).
십자군 성채 남아 있어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을 수출하고, 이집트산 파피루스를 사들여 그리스 등지에 파는 중계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그발은 역사적으로 아시리아ㆍ페르시아ㆍ그리스ㆍ로마ㆍ이슬람 등의 반복된 침략과 지배를 받았으며, 1104년 십자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세력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동안 고대 유적들은 점차 파괴됐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유적의 발굴로 페니키아 시대 및 로마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러 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지금도 유적지 입구에는 십자군 점령기에 축조된 큰 규모의 성채가 있다. 또 신석기,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오벨리스크 신전 터, 로마 시대의 도로와 원형 극장, 십자군 시대 성벽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존재한다.
성경에서는 여호수아가 죽기 전까지 정복하지 못한 땅으로 나타난다. “또 그발족의 땅, 헤르몬 산 아래 바알 가드에서 하맛 어귀까지 이르는 해 뜨는 쪽의 온 레바논이다”(여호 13,5). 그발은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꾀해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적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흉계를 꾸미고 당신을 거슬러 동맹을 맺습니다. 에돔의 천막들과 이스마엘인들 모압과 하가르인들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 필리스티아와 티로의 주민들도 함께”(시편 83,6-8).
그 옛날 해양국가로 조선업이 발달한 이곳 항구는 오늘날에는 초라한 항구로 남아 있다. 옛 항구 터에 아무런 항구 시설이 없어 화려했던 과거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3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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