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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스라엘 이야기: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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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01 조회수5,804 추천수2

[이스라엘 이야기] 통곡의 벽


하느님 현존 상징하는 유다교의 ‘심장’



통곡의 벽 전경. 왼쪽에 황금사원이 보인다. 사원이 있는 장소가 옛 성전이 봉헌됐던 모리야 산이다.


유다교 최고의 성지는 통곡의 벽이다. 늘 붐비는 곳이지만, 특히 월·목요일은 성인식으로 떠들썩하다. 십대 초반에 이미 어른의 자격을 받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꼬맹이들이 기특해 보인다. 가족·친지들은 신나는 북소리에 춤을 추고, 이웃에게 사탕도 던지며 흥을 돋운다. 여자아이는 만12세, 남자아이는 13세에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는 성년으로 인정받는다. 통곡의 벽에서 성인식을 하는 까닭은, 그 위로 연결된 모리야 산에 서기 70년까지 성전이 봉헌돼 있었기 때문이다. 곧, 옛 성전 가까운 곳에서 일생일대의 사건을 기념하고자 한다(독립 기념일, 군인 선서식 등도 통곡의 벽에서 치른다).

성전을 마지막으로 보수한 이는 건축왕 헤로데였다. 기원전 20년 그는 모리야 산을 평평하게 깎아 오백 미터 길이의 광장을 만들고, 그 위로 성전 개축을 시작했다. 무너진 성전을 통감하게 하는 통곡의 벽을 보노라면, 예루살렘을 우러러 한탄하신 예수님의 눈물이 떠오른다(마태 23,37-39). 강도들의 소굴로 타락한 성전이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 예고하셨듯이, 서기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열혈당원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성전을 파괴했다. 이 사건은 유다인들에게, 우리가 명성 황후 시해나 불탄 숭례문에서 느끼는 아픔에 버금가는 고통을 주었다. 이제 성전은 유적도 거의 없고, 모리야 산을 사각으로 감싼 바깥벽들만 남았다. 그 가운데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솔로몬이 첫 성전을 봉헌하며 ‘이곳에서 바치는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십사’ 청했기에(1열왕 8,30), 유다인들은 지금도 성전과 가까운 서쪽 벽으로 모인다. 다른 쪽에도 벽이 있지만, 옛 지성소가 바라보던 방향인 서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통곡의 벽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해 주는 심장 같은 곳이다. 벽 길이는 오백 미터에 달하나,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통곡의 벽은 전체의 1/8 정도에 해당한다.

통곡의 벽으로 향하는 성인식 행렬. 앞에 선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통곡의 벽 이름은, 유다인들이 로마에 거슬러 일으킨 2차 반란에서 유래했다. 서기 66년 발발한 열혈당원들의 1차 반란 뒤, 132년에는 바르 코흐바 혁명이 이어졌다. 두 번에 걸친 반란에 분노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유다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내쫓았고, 나중에야 그들은 아브월 9일(성전파괴일)에만 예루살렘 출입 허가를 받는다. 그날 유다인들이 이 벽을 붙들고 통곡하다가, 울면서 떠났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전이 무너지던 날 벽이 이슬에 젖어 우는 것처럼 보였으므로 통곡의 벽이라고도 전한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방문해 간절한 기도문을 벽에 꽂는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도 눈길을 끌었다. 다만, 오십 년 전만 해도 통곡의 벽은 유다인들에게 그야말로 화중지병, 곧 그림의 떡과 같았다. 통곡의 벽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이 요르단 영토라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1967년 일어난 6일 전쟁 뒤에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통합에 성공한다.

통곡의 벽은 역사도 흥미롭지만, 전통 유다인들의 종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장소다. 유다교는 남녀가 유별하므로, 회당이 남자 층, 여자 층으로 구분되어 있듯이 통곡의 벽에서도 따로 기도해야 한다. 가부장적 전통에 따라, 남자 구역이 몇 배 넓다. 토라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지성소나 독실한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도서관도 남자 구역 안에 파인 동굴에 있다(게다가 동굴 내부에는 밖에서 볼 수 없는 서쪽 벽 일부가 계속 이어진다). 성당에서는 남자들이 모자를 벗지만, 유다교는 반대다. 이방인도 통곡의 벽에서는 ‘키파’라는 정수리 모자를 써야 한다. 여인들은 민소매 등의 짧은 옷을 입을 수 없다.

통곡의 벽에서 사람 구경을 하다 보면, 앞뒤로 몸을 흔들며 기도하는 유다인들도 포착된다. 졸면 안 되니까 흔드느냐는 질문도 나오고, ‘흔들어 바치면 두 배’이기 때문이라고 재미있게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온몸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몸을 흔들며 모세오경을 읽는 모습은 꽤 신실해 보인다. 차 안에서 책을 읽어도 어지러운데, 온몸으로 토라를 봉독하는 모습은 나름의 신앙을 오라처럼 발산한다. 기도 뒤에는 지성소에 계실 하느님께 등을 보이지 않도록 뒷걸음을 친다. 조심스럽게 물러나오는 유다인들을 볼 때마다, 2000년 전 통곡의 벽 위에서 위엄을 떨쳤을 웅장한 성전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남자 구역 동굴 내부에서 종교서적을 읽는 유다인. 그 옆으로 지성소가 보인다.


 
통곡의 벽(남자 구역)에서 키파를 쓰고, 신명 6,8의 율법대로 이마에는 성구갑, 팔에는 끈을 묶은 유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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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8월 30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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