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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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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0 조회수4,846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엘리사


엘리야 부름에 모든 것 버리고 예언자의 삶 선택

 

 

예리코 전경. 멀리 모압 산지가 보인다. 현재는 요르단 영토에 속한다. 엘리야가 승천한 장소가 바로 이 부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성격대로 한 생을 살아간다. 곧, 자기 성격이 인생을 이끌어가게 될 팔자다. 그래서 지난 십 년 동안 삶이 이러저러했다면, 향후 십 년도 비슷하게 이어질 확률이 높다. 물론 삶이 이러저러했다고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며, 우리는 무의식중에 성격과 기질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일생을 걸고 세상에 업적을 남긴 이가 있다면, 그가 품었던 포부와 그것을 위해 희생한 안위,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 인내 때문에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필자는 그런 인물들 가운데 하나로 엘리사를 꼽고 싶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기원전 9세기 북왕국에서 활동했다. 본디 겨릿소 열두 마리를 부리는 농부였다고 하니(1열왕 19,16), 윤택한 집안 출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엘리야가 부르자, 미련 없이 소를 버리고 따라나선다. 마치 예수님이 부르시자, 그물을 버리고 따라간 제자들처럼.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옷을 걸쳐주는데(19-21절), 당시 예언자들은 복장에서 신분이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옷을 걸쳐준 것은 엘리사에게 예언 소명을 맡긴다는 상징행위가 된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가기 전에, 쟁기로 불을 피우고 소들은 죄다 잡아 잔치를 베푼다. 곧,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아마 이런 결단력 때문에, 주님께서 엘리사를 예언자로 점찍으신 듯. 최고 권력자와의 갈등도 감수해야 하는 예언 소명은 웬만한 의지로 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에 전문 예언자들이 많았음에도(1열왕 20,35 2열왕 2,3 등 참조), 엘리사가 선택된 까닭은 한 방향만 바라보는 근성, 그것이 엘리야의 뒤를 잇기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근성은 스승과 함께 길갈에서 예리코로 가던 길목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엘리야의 승천 전, 남아 있으라는 스승의 권고에도 엘리사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는 끈질김을 보여 신임을 얻었다(2열왕 2,2.4.6). 이런 끈기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 하신 마태 24,13을 떠올린다. 결국 엘리사는 스승의 승천을 목격하고, 엘리야 갑절의 능력도 받게 된다(2열왕 2,9-10).

예리코에 있는 샘.

 

 

엘리사는 경이로운 사건을 많이 일으켜, 기적의 예언자로 통한다. 예리코 샘의 수질이 나빠졌을 때, 그는 물에 소금을 뿌려 좋게 만들었다(2열왕 2,19). 과부의 아들들이 가난 탓에 종으로 팔릴 위기에 놓이자, 기름 한 병으로 그릇마다 채우는 기적을 베풀었다(2열왕 4,1-7). 불임이던 수넴 여인에게는 아이를 낳도록 도와주었고, 그 아이가 죽자 살려내었다(2열왕 4,8-37). 국에서 독을 발견했을 때는, 밀가루를 섞어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2열왕 4,38-41). 문둥병을 앓던 아람 장군 나아만은 엘리사의 지시대로 요르단 강에 몸을 담그자, 새 살이 돋아났다(2열왕 5장). 엘리사는 심지어 죽어서도 기적을 일으켜, 주검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그 망자가 되살아난다(2열왕 13,21). 이 모든 기적들은 엘리사가 진정 하느님의 사람이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제 엘리사의 일생을 반추해보자. 그는 예언자로 투신하기 위해 안정된 삶과 열두 겨릿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엘리야가 물려준 지저분한 겉옷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엘리야처럼 주님 영을 받게 되기를 소망했으며, 마침내 엘리야 갑절의 능력을 얻었다. 곧, 그에게는 부나 안락함보다 주님의 대변자로 사는 것이 더 명예롭게 여겨졌던 것이다. 이런 엘리사의 삶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를 도우면 완전해지리라는 조언을 따르지 못해 주저앉은 부자 청년과 대조를 이룬다(마태 19,21-22). 그 청년에게도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던 것 같다(20절). 그러나 근성이 받쳐주지 못하자, 자신의 한계에 슬픔을 느낀 듯하다(22절). 곧, 십계명 준수에는 성공했으나, 하늘 나라의 보물을 차지할 수 있는 마지막 하나를 채우지 못했다.

우리도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며 무게 중심을 잡는다. 그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결과가 달라진다. 이 또한 성격과 기질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래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한 듯. 하지만 큰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엘리사가 품었던 포부와 근성이 귀감이 된다. 또한 생각만 하고 행동하는 데에 무척 소심해진 우리 현대인들에게 엘리사는 타성에서 벗어나도록 자극을 주는 훌륭한 모델이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9월 20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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