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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40: 나의 의로운 종은…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이사 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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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6 조회수4,691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0) “나의 의로운 종은…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이사 53,11)


타인 위해 수난·죽음 당한 ‘주님의 종’은 예수



카라바조 작,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1606년. 빌라도가 가시관을 쓰고 자주색 망토를 걸친 예수를 가리키며 군중을 향해 ‘이 사람을 보라’(에케 호모)고 세 번 외친 장면을 묘사한 작품.


많은 이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하느님의 손에서 고통을 받는 종.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고통받는 주님의 종을 예고하는 것이 지난주에 읽기 시작했던 이사야서 제2부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네 본문에 ‘주님의 종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사야서 42장 1-9절, 49장 1-7절, 50장 4-11절, 52장 13절─53장 12절입니다. 하지만 성경 원문에는 단락이 나누어져 있거나 제목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종의 노래’라는 것은 19세기 말에 학자들이 붙인 제목입니다.

이사야서 제2부는 사실 ‘종’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종’은 이스라엘을 지칭합니다(41,8.9; 44,1 등). 그런데 가끔, ‘종’이 이스라엘을 가리키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단락들이 있습니다. 이 노래들에서 ‘종’은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개인 또는 몇몇 사람들로 보입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단락들을 골라내어 ‘주님의 종의 노래’라 불렀습니다.

이 노래들에 나오는 ‘종’은 이사야 예언서 제2부의 다른 부분들에서 ‘종’으로 일컬어지는 이스라엘과 여러 점에서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자신의 죄에 대하여 죗값을 다 치렀고(40,2) 이제는 용서를 받게 되었는데(44,22),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 종은 무죄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겪습니다(53,4-7.11). 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권리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탄식하는데(40,27) 이사야서 49장 4절에서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자신의 권리를 돌보아 주심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 종이 누구인지는 잘 밝혀지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종이 모세와 같이 먼 과거의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당시의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레미야, 여호야킨 등 여러 인물이 후보로 등장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이 노래들이 역사상의 어떤 인물에게서 완전히 실현된 것이 아니라고 보아 미래의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이미 수렁에 빠졌습니다. 주님의 종의 노래를 읽으면서, 종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데에 관심을 집중하면 결국은 실패합니다. 종은 여러 의미를 동시에 갖기 때문입니다. 종이 누구인가 하는 것보다, 종의 노래에서 종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를 보아야 길이 열립니다.

첫째 노래(42,1-9)에서는 하느님께서 종을 선택하십니다. 그 종은 하느님께서 선택한 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이입니다. 둘째 노래는(49,1-7) 종의 사명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이스라엘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셋째 노래는(50,4-11) 이 사명을 수행하며 종이 겪게 되는 운명을 묘사합니다. 여기에서 이미 박해와 거부, 고통이 나타납니다. 마지막 넷째 노래는(52,13─53,12) 종의 죽음을 주제로 합니다.

이 노래들에서 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없다 해도, 중요한 것은 주님의 종의 노래들이 보여주는 고통과 구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입니다. 특히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 무죄한 종의 고통은 많은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줍니다. 전통적으로는 악인이 벌을 받아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꾸로 고통받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여겼었습니다. 주님의 종의 노래는 이 도식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 종이 받는 고통은 그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죄를 짊어지는 고통입니다. 종은 무죄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뜻하신 이러한 고통을 순종으로 받아들입니다.

종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이 노래들을 어떤 맥락 안에서 읽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종의 노래들을 따로 떼어놓고 읽을 때, 이 노래들만 모아놓고 읽을 때, 이사야서의 앞뒤 문맥 안에서 읽을 때 그 해석은 달라집니다. 그 가운데 주님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는 해석은 구약과 신약을 모두 하나로 묶어 놓고 그 안에서 이 노래들을 읽을 때에 나오는 결과입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 노래들을 읽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 말씀들이 온전히 실현된다고 보았고 그래서 이 노래들을 인용하여 예수님께 적용시켰던 것입니다.

이 노래의 본래 저자가 처음부터 예수님을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예수님께 적용시키는 것은 구약이 신약에서 완성되고 성취되었다고 보는 전망 안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입니다. 이사야서의 다른 본문들에서도 그렇듯이(예를 들어 7장의 임마누엘 예언) 이 해석은 자주 주님의 종의 노래들을 인용하는 신약 성경 자체 안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 노래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고 보았으며, 이 노래들을 통하여 그 수난과 죽음을 이해했습니다. 특히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 나타나듯이 종의 죽음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고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을 비참한 모습이었으나, 그를 바라보던 이들은 그의 죽음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한 죽음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는 고통이 순전히 부정적이고 무가치한 것이며 고통당하는 사람 자신의 죄의 결과 또는 그가 받은 저주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시각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러한 의미의 고통과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9월 27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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