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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성경의 기도: 성모송과 관련된 구절들 - 루카 복음서의 기도 해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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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7 조회수5,437 추천수1

[신약성경의 기도] ‘성모송’과 관련된 구절들


루카 복음서의 ‘기도’ 해설 2



이번호에서도 ‘성모송’과 관련된 구절을 해설하겠다. 먼저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라는 기도문이 지닌 의미를 루카 복음서의 맥락에서 살펴보겠다. 이어서 비록 루카 복음서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성모송의 중요한 부분인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기도문이 지닌 의미를 ‘죽음의 준비’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살펴보겠다.


루카복음 1장 42절

맥락 : 성모송에 사용되는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라는 말씀은, 루카 복음서 안에서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루카 1,39-56)에 나온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한 인사말의 한 부분이다. 이 이야기에서 장차 어머니가 될 두 여인뿐 아니라, 그들 태중에 있는 두 아기도 자연스럽게 만난다.

구성 :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즈카르야의 집에 마리아가 도착하는 것(39-40절)으로 시작하여 마리아가 그곳을 떠나는 것(56절)으로 끝난다. 이야기 부분(39-45절)과 ‘찬양시’ 부분(마리아의 노래, Magnificat : 46-55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 부분 : 성경에 나오는 매우 아름다운 ‘만남의 장면’ 중의 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두 여인이 만나고 있다. 하느님의 적극적인 구원활동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준다.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에서 마리아가 자신에게 베풀어진 일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데 비해, 여기(39-45절)에서는 다른 사람, 곧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에 반응을 보인다. 곧 이야기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다.

41-42ㄱ절 :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외쳤다.”

마리아의 인사에 대하여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기 요한이 반응을 보인다.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라는 말은 표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창세 25,22을 보면 에사우와 야곱이 어머니 레베카의 태중에서 가진 관계는 앞날에 그들이 갖게 될 관계를 암시하는데, 여기 루카 복음(1,41.44)에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태중에 있던 요한이 보이는 태도는 그가 장차 커서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관계를 맺을지 암시한다.

엘리사벳은 아기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마리아와 그에게서 태어날 아기에 관하여 예언자적인 말을 한다. 여기서 “성령으로 가득 차서”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호에서 보았듯이,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성령의 역할’이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 이야기 전체 안에서도 매우 강조되어 있다.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리던 시기의 인물들이 성령으로 가득 차거나, 성령을 받는다. 이를테면, 요한 세례자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1,15)라는 말씀이 나오고,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마리아를 향해 찬양의 말을 하며(1,41),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도 “성령으로 가득 차”, ‘즈카르야의 노래’를 읊는다.

‘성령의 역할’의 강조는 루카 복음서 ? 사도행전에서 예수님 이전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도, 또 교회의 시대에도 계속된다. 사실, 예수님의 삶 자체도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었다(잉태, 세례, 유혹, 나자렛 회당에서의 강론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사도행전에 따르면,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탄생 과정(오순절 성령강림 참조)에서뿐 아니라, 그 성장과정과 선교과정에서도 성령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과연 ‘성령의 복음서’라는 별명이 낯설지 않을 만큼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42ㄴ절 :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강)복”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고 보존시키는 힘이며 권능을 뜻한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하느님이 보존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느님의 (강)복을 통해 전해진다(창세 1,22.28; 2,3; 9,1; 12,2 이하 참조). 성경에서 (강)복과 생명, 복의 충만함과 생명의 충만함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히 “복되신 분”이시다. 창조적인 하느님의 권능이 그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 인간적 생명을 주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엘리사벳의 “큰소리”(42ㄱ절)는 “하느님의 일하심”에 대한 찬양이지만 동시에 그런 복을 받은 마리아에 대한 기쁨의 탄성이다.

43-45절 :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주님(퀴리오스)”이라는 칭호는 본디 부활 현양되신 분의 칭호라고 볼 수 있는데(사도2,36), 루카 복음사가는 이미 예수님의 유년 이야기에서 이 칭호를 사용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45절)이라는 엘리사벳의 탄성은 단락 전체를 이해하는 데 열쇠의 역할을 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엘리사벳의 이 말을 통해 마리아의 믿음을 강조하며, 마리아를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부터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미 예수 탄생 예고의 끝 부분에서도 마리아를 다음과 같이 “믿는 이들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그런데 바로 이 구절에서도 분명히 보이듯이, 루카 복음서에 묘사된 마리아의 믿음은 주님의 뜻을 온전히 다 이해했기 때문에 갖는 믿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명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님을 믿었기에, 그분의 자애와 전능을 진정으로 믿었기에, 그분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사명도 겸손하고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카 복음사가가 묘사하는 마리아의 믿음의 자세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해설’에 나오는 ‘좋은 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 8,15).

‘기도’라는 주제와 관련지어 정리해 보자면, 루카 복음서에서 ‘성령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과 마리아를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신 분”으로 칭송하면서 동시에 ‘믿음의 여인’으로 강조하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루카 복음서의 맥락에서 볼 때, 하느님께 올바른 기도(특히 찬양 기도)를 올리려면 특히 다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경우처럼, ‘성령으로 가득 차’야 한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말했듯이(1,41) 즈카르야도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을 찬양하였다(1,67). 즈카르야가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벙어리 상태에서 풀려나 다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는데 “성령으로 가득 차는” 변화가 필요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될 때’,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경우처럼,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활동을 알아보고 기쁘게 찬양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올바른 기도를 바치려면, 성모님이 지니셨던 ‘믿음’을 본받으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음을 ‘미리 준비시키고’, 성모님이 지니셨던 믿음을 본받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외우기만 하는 기도는 결코 참다운 기도라고 할 수 없다.


성모송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기도문과 ‘죽음의 준비’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모송의 끝 부분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부분은 교회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기도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제민 신부의 다음 글이 참으로 깊고 아름다운 내용을 지니고 있어,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다. 필자의 해설을 생략한 채 그 글을 인용하겠다(이제민 지음 ? 최봉자 그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 성모송[개정판]」, 성서와 함께 2009년, 105-106쪽. 인용문 안의 줄바꿈과 밑줄, 짙은 글씨 등은 인용자가 한 것이다).

“성모송을 바치면서 우리는 성모님께, 임종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그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그 기도로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기를 간청한다. 그리고 틀림없이 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 주시리라고 확신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중략)

‘죽을 때’ 인간은 가장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가장 겸손하고 사랑스러운 자세로 사랑하는 사람과 절대 신비 앞에 서게 된다. 죽음이 이런 신비스러운 사랑으로 한 인간에게 나타날 때, 죽음이 한 인생을 이런 사랑과 신비와 하나가 되도록 관계를 맺어줄 때, 인간은 이기적인 자아(ego)의 지옥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 구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성모송은 인간을 그런 사랑과 신비의 순간으로 안내한다.

사람은 잘 못 죽을 수 있다. 미움과 증오 가운데 원수가 되어 죽을 수 있다. 때문에 성모송은 성모님께서 우리 죽을 때 우리 곁에 계셔달라고 간청한다. 사랑 가운데 죽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랑과 자비 자체이신 하느님을 느낄 때 인간의 죽음은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송은 우리가 사랑하며 살고 죽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 김영남 다미아노 - 의정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특히 바오로 서간)을 전공하였다. 최근 「로마서」(성서와 함께, 2014년)를 저술했다.

[경향잡지, 2015년 9월호, 김영남 다미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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