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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의 열두 주제9: 예로보암의 금송아지와 광야의 금송아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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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30 조회수5,355 추천수1

[구약성경의 열두 주제 09] 예로보암의 금송아지와 광야의 금송아지 사건


 

가나안 최북단인 ‘단’에 가면, 북왕국 태조 예로보암이 세웠다는 금송아지 제단 일부가 남아있다. 예로보암은 ‘베텔’에도 이것을 만들었는데, 그곳은 위치만 대략 추정한다. 십계명에는 주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모습을 본뜬 신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규정이 나온다(탈출 20,3-4; 신명 5,8-9 참조).

그런데도 예로보암은 송아지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다. 우리는 비슷한 사건을 「성경」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는 탈출기 32장이다. 예로보암의 금송아지와 광야의 금송아지 사건은 너무 비슷해, 서로 관계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다른 것이 아닌 송아지를 택한 까닭은 무엇이었나? 두 사건이 무슨 배경으로 발생했고, 또 어떤 관계였는지 밝혀보려 한다.


광야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뒤(탈출 24,1-11),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가 사십일을 지냈다(탈출 24,18). 그는 이스라엘의 첫 예언자로서, 하느님 말씀을 대신 듣고 전해주는 중개자였다(탈출 20,19). 그런 모세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백성은 불안한 마음에 그의 형 아론에게 몰려간다. 그러자 아론은 아무 망설임이나 죄의식 없이 금붙이를 모아 수송아지 상을 주조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기라고 선포한다(탈출 32,4).

송아지 상을 주조한 금붙이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털어온 전리품이었다(탈출 12,35-36). 곧, 에제키엘의 꾸짖음처럼(에제 16,10-13.17),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주신 장신구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겼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이집트 탈출 직후 발생했다. 하느님과 계약까지 맺은 백성이 그새 송아지 상을 만들어 섬겼다는 사실이 좀 뜬금없다. 하지만, 당시 백성이 아론에게 쏟아놓은 요청에서 알 수 있듯이(탈출 32,1: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주십시오. …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눈으로 확인해 주는 증거였다.

모세가 있을 때는 그가 하느님을 대변해 주었다. 그런데 모세가 사라지니, 자신들을 하느님께 연결해 줄 매체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인간은 보고 느낄 수 있는 실체가 필요한, 감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왜 굳이 송아지였을까?


소의 신성

고대 근동인들은 소를 신성하게 여겼다. 폭풍의 신 ‘하닷’은 황소 위에 서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었다. ‘날개 달린 소’ 형상을 만들어, 신전이나 궁전 입구를 지키게도 했다. 특히 뿔 달린 황소는 신이나 군주, 권력의 표상이었다. 이 관점은 구약성경에도 영향을 주어, 하느님은 “야곱의 장사”(창세 49,24; 시편 132,2)라 불린다. ‘야곱의 장사’는 히브리어로 ‘아비르 야아코브’인데, ‘야곱의 황소’로도 직역된다. 곧, 하느님의 권능을 황소의 힘에 비긴 표현이다.

물론 탈출기 32장은, 이스라엘이 수송아지를 주조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시편 106,19-20에는 (황)소가 (수)송아지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쇠를 부어 만든 상에 경배하였다. 그들의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과 바꾸었다.” 그래서 광야의 배교를 표현한 성화에는 송아지가 뿔 달린 황소로 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집트인들은 ‘아피스’라 불리는 소를 신으로 섬겼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송아지 상을 만든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여호 24,14은 가나안 정복이 끝난 뒤, ‘이제부터 주님을 경외하며, 조상이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라.’고 촉구한다.

아론이 송아지 상을 만들려고 모아온 금붙이 또한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경」에는 야곱이 가족들에게 “낯선 신들”을 버리라고 종용하면서, “귀걸이”를 함께 파묻도록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창세 35,4). 곧, 귀걸이가 치장 목적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는 어감을 풍긴다.

판관시대에는 기드온이 금고리, 귀걸이, 목걸이 등의 장신구로 ‘에폿’(대사제가 걸친 전례복의 하나다. 경신례를 위한 것이었으나, 앞날을 점치는 데에도 쓰인 듯하다. 이스라엘이 에폿을 집안 수호신이나 주조신상과 함께 사용했다는 판관 17,4-5; 호세 3,4 등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을 만들어, 그의 집안에 올가미가 된 사건이 있었다(판관 8,24-27). 아론의 행위는 금과 장신구를 모아 에폿으로 만든 기드온과 닮은 구석이 많다. 곧, 아론은 금으로 송아지를 주조해, 신성을 더하려 했던 듯하다.


계약 파기

금송아지 주조 사건으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파기된다. 모세는 계약 파기의 표시로 십계명이 담긴 증언판을 깨뜨렸다(탈출 32,19). 이 증언판은, 주님께서 당신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새기신 돌판이었다(탈출 31,18). 그것을 깨뜨린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더 이상 계약상대자로 인정하지 않으심을, 곧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가 파탄났음을 뜻한다.

모세는 죄악의 근원이 된 송아지 상도 불태운다. 그리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린 뒤, 백성에게 ‘마시게’ 했다. 흥미롭게도 이 행위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남편이 아내의 정숙을 시험해 보는 민수 5,12-31을 떠올린다.

민수기에 따르면, 사제는 성막의 흙 ‘먼지’를 섞어 저주를 부르는 쓴 ‘물’을 만든 뒤, 의심받는 아내에게 ‘먹여야’ 한다. 유죄인 경우에는 물이 여인의 몸을 쓰리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송아지 상을 갈아 섞은 물을 백성에게 마시게 한 것은, 남편이신 하느님께서 배신한 아내에게 행하는 그런 의미였다.


금송아지와 케루빔, 그리고 그 차이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송아지 상을 만들면서도, 그 자체를 신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계약 궤 위에 장식된 커룹들, 곧 케루빔(커룹의 복수형)처럼(탈출 25,19-20), 하느님께서 좌정하신 옥좌를 상징해 주는 의미로 본 듯하다(1사무 4,4: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 참조). 곧, 이스라엘은, 케루빔 위에 좌정하신 하느님과 송아지 위에 좌정하신 하느님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모세가 주님의 현존을 입증하는 대리인이었듯이, 송아지도 하느님의 현존을 대리해주는 매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죄가 된 까닭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게서 송아지에게로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백성은 이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피조물에 불과한 송아지 안에 주님의 존재를 가둠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함이 축소될 것이다. 우려했던 일은 실제가 되어, 호세아는 송아지 상이 대장장이의 작품에 불과하며 하느님이 아니라고 강조한다(호세 8,6 참조).

그렇다면, 계약 궤 위에 새긴 케루빔은 어떤가? 에제키엘은 1장과 10장에 실제 케루빔을 묘사한다. 얼굴은 각각 네 개로, 사람의 얼굴과 황소의 얼굴, 사자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을 가졌다. 곧, 커룹도 얼굴에 황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형상으로 만들어도 괜찮았던 케루빔과 달리, 송아지 상은 금하였다.

그 까닭은 아마 살아있는 것의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탈출 20,4; 신명 5,8) 때문이었을 것이다. 케루빔은 우리가 아는 피조물 가운데 닮은 것이 없으나, 송아지는 너무 흔하다. 그러므로 소나 송아지를 볼 때마다 그 자체를 신성시할 위험이 있었다.


예로보암의 금송아지 제단

광야에서 발생한 금송아지 사건은 이것으로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뒤, 반란을 일으켜 북왕국을 세운 예로보암은 국경도시인 ‘단’과 ‘베텔’에 또다시 금송아지 제단을 만든다(1열왕 12,28-33). 남왕국이 다윗 계약에 중심을 두어 시온 신학을 강조한 반면(2015년 8월호 참조), 북왕국은 탈출기 전승에 중점을 두고자 했던 것 같다.

예로보암의 제단을 자세히 보면, 탈출기의 금송아지 사건을 여러 모로 연상시킨다. 송아지 상을 만들어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1열왕 12,28) 하고 선포한 예로보암의 말은,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탈출 32,4)라고 선언한 아론을 거의 동일시한다.

예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와 ‘나답’은(1열왕 14,1; 15,25), 아론의 아들인 ‘아비후’와 ‘나답’을 떠올린다. 아비후와 나답은 속된 불을 피워 죽임을 당했다(레위 10,1). 아비후와 나답이 주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했듯이, 예로보암은 아들 이름을 그렇게 선택한 때문에라도 주님 눈에 들지 못했을 것 같다.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제단에 레위인들을 배제했다(1열왕 12,31). 예루살렘 성전을 견제할 만한 강력한 조치나 행동강령이 필요했기에, 의도적으로 그곳에서 합법 사제로 일하는 레위인들을 제외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교했을 때, 주님 편에서 활약했던 이들이 아닌가(탈출 32,25-29).

게다가 예루살렘 성전은 계약 궤와 케루빔을 지성소 안에 두어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은 반면, 예로보암의 금송아지는 누구나 와서 그 상에 입을 맞출 수 있었다(호세 13,2).

아론은 금송아지 주조 뒤에도 대사제의 직분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가 숭배 목적으로 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케루빔처럼 하느님의 왕좌를 상징하려고 만들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신명 9,20에 따르면, 주님께서 아론을 파멸시키려 하셨으나, 모세의 중재로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로보암은 탈출기의 죄악을 북왕국에 뿌리내리게 했으므로, 끝까지 심판을 면치 못한다(2열왕 17,21-23).

열왕기는 북왕국이 먼저 멸망한 까닭을 예로보암의 죄에서 찾았다. 북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함락되어,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것이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5년 9월호,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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