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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 문화와 영성10: 다윗과 골리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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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08 조회수7,792 추천수1
파일첨부 카라바조_다윗과 골리앗.jpg [822]   카라바조_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jpg [699]  

성경, 문화와 영성 (10) 다윗과 골리앗



다윗은 아브라함, 모세, 아론 등과 함께 구약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이고 탁월한 시편 작가였다. 그리고 다윗은 유다인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메시아 사상 형성에도 특별한 영향을 끼쳤는데,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여겨졌다. 특히 구약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1사무 17장)는 르네상스 이후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에서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 카라바조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는 장면이 아니라 그 직후의 장면을 그렸다.


■ 구약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

○ 다윗은 이사이의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유다 베들레헴은 나오미와 보아즈의 고향이었다. 나오미의 며느리인 모압 출신 룻은 보아즈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는데,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던 것이다. 1사무 16,1-13에 따르면,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나서 자란 곳일 뿐 아니라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곳이다. 특히 베들레헴이 주목 받고 메시아 신앙의 중심지가 된 것은 미카 5,1의 예언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 너는 유다의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 너에게서 나오리라.” 즉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훗날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 다윗은 이사이의 여덟 아들 중의 막내였다. 이사이의 큰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싸움터에 나갔고, 다윗은 사울이 있는 곳과 베들레헴 사이를 오가며 아버지의 양 떼를 쳤다.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에는 골리앗이라는 갓 출신 투사가 있었는데, 키가 여섯 암마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고, 머리에 청동 투구를 쓰고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무게가 육백 세켈이나 되는 창을 들고 있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너희 가운데 하나를 뽑아 나에게 내려보내라. 만일 그자가 나와 싸워서 나를 쳐 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다. 그러나 내가 이겨서 그자를 쳐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1사무 17,8-9)고 소리쳤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군은 골리앗의 말을 듣고, 너무나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다. 사울의 진영에 있는 세 형들에게 볶은 밀과 빵을 갖다 주러 온 다윗이 골리앗의 말을 듣고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1사무 17,32)라고 사울에게 말한다. 어린 소년인 다윗의 거듭되는 간청에 사울은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1사무 17,37)고 말하며 자기 군복, 청동 투구, 갑옷, 칼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골리앗에게 갔다. 마침내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골리앗의 이마를 맞혔고, 돌이 이마에 박히자 골리앗은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다윗은 달려가 골리앗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1사무 17,49-51)

○ 다윗의 승리는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1사무 17,45),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1사무 17,47)고 말했다. 골리앗을 무릿매질로 죽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마침내 임금이 된다.


■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 카라바조는 그의 인생 여정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작품을 살펴보려 한다. 첫째,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DavidGoliath)은 1607년 포플러 나무에 그린 유화로 90.5×116cm의 크기이며, 오스트리아 빈의 예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에 있다.

○ 카라바조는 성경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지극히 평범하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표현한다. 이 그림에서 소년 다윗은 칼을 등 뒤로 걸치고,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군중에게 보이고 있다. 어두운 배경과 대조되는 빛은 다윗의 가방 주머니와 상체를 비추고, 입을 벌린 채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골리앗의 머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윗은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그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다.

○ 둘째,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은 1610년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125×101cm의 크기이며, 로마의 보르게제(Borghese) 미술관에 있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나폴리에서 그린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 이 그림에서 묘사된 다윗의 얼굴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승리의 기쁨에 찬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카라바조가 해석하여 표현한 다윗은 자신이 죽인 필리스티아의 적장 골리앗을 연민의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슬픈 표정의 인물이다.

○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의 잘려진 머리는 다름 아닌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라는 해석이 강하게 존재한다. 화가 자신의 얼굴을 그림 안에 그리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작품들에서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순교자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사람의 얼굴 가죽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얼굴을 골리앗으로 표현함으로써,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힘든 상황에 처한 화가 자신을 성경의 인물과 동일시하고 있다. 카라바조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어 로마를 떠나 나폴리로 도망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골리앗으로 표현하여 보르게제 추기경에게 구명을 간청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골리앗의 죽음이 교만의 결과였다면 다윗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믿고 교만했던 카라바조 자신이었던 것이다.

○ 이 그림의 골리앗이 카라바조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면 다윗의 모습 또한 화가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오른 다윗처럼 카라바조의 젊은 시절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각광받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제 살인을 저지른 처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슬픈 표정의 다윗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화려하고 교만했던 젊은 시절의 영광은 이제 슬픔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다.

○ 결국 이 그림의 다윗과 골리앗은 모두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그는 젊은 다윗인 동시에 늙은 골리앗이다. 카라바조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다윗도 골리앗도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카라바조는 인간이 경험하는 승리와 패배, 영광과 절망, 겸손과 교만의 양면을 다윗과 골리앗의 모습을 통해 표현하려 하였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5년 10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www.wga.hu/art/c/caravagg/08/52david.jpg)
(원본 : http://www.wga.hu/art/c/caravagg/11/70davi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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