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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베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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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18 조회수6,125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베텔


야곱이 꿈속에서 천상 계단을 본 곳



베텔 유적지. 현재는 돌무더기와 정체를 알기 힘든 건물 일부만 남았다.


베텔은 야곱이 하늘까지 닿는 천상의 계단을 본 곳이다(창세 28,10-22). 예루살렘에서는 북쪽으로 17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필자가 베텔에 처음 가본 날 느낀 흥분은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현 베텔은 팔레스타인 아랍 마을이기에, 교통이 불편하고 정치적으로도 다소 불안정하다. 가기 힘든 곳이라 그런지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야곱이 베텔을 지나간 때는 맏아들 권리와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뒤, 형의 분노를 피해 도망가던 도중이었다. 그는 어머니 고향인 하란으로 방향을 잡고, 외숙 라반을 찾아가고 있었다(창세 28,1-2). 본디 형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도 한몫했다. 그러다가 루즈라는 곳에서 하룻밤 쉬게 되어 잠이 들자, 꿈속에서 하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을 보게 된다. 계단 꼭대기에는 주님이 서 계셨는데(창세 28,13-15),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잠에서 깬 야곱은 그곳이 하늘의 문임을 깨닫고, 베개로 삼은 돌을 세워 기념 기둥으로 만든다. 그 돌베개가 바로 꿈에서 본 환시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읍 이름도 루즈에서 베텔로 바꾸었다(창세 28,17-18).

베텔은 히브리어로 ‘벳 엘’인데,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곧, 하늘이 문처럼 열리고 천사들의 무리가 나타난 그 진귀한 장면을 지명 안에 함축시키려 한 듯하다. 이어서 야곱은 자기가 만든 돌기둥에 기름을 붓고 하느님께 서원을 했다. 이 기름부음은 환시가 있었던 장소를 성별(聖別)하는 동시에(탈출 40,9 참조), 자신이 한 서원에 증표가 되어 주는 것이다(창세 32,13 참조). 서원 내용은, 주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그를 지켜주어 무사히 귀향시켜 주시면 주님은 그의 하느님이 되실 것이며, 기념 기둥을 만든 자리에는 제단을 쌓고 주님께 십일조를 바칠 것을 골자로 한다(창세 28,20-23).

 

흥미롭게도 고대 유다 문헌은 층계를 오르내린 천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땅으로 내려오는 천사들은 야곱이 가나안을 떠날 때 동행할 천사들이고, 층계를 올라가는 천사들은 그가 가나안에 있을 때 보호해 주던 이들이라고 풀이했다(창세기 라바 68,12). 창세 28장에서 야곱은 가나안을 떠나 하란으로 피난 가던 길이었다. 그러므로 이제껏 보호해 주던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가나안 밖에서 동행할 천사들은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해석했다. 쉽게 말하면, 야곱의 수호천사들로 본 것이다. 이는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겠다고 하신 주님 약속을(창세 28,15) 떠올리는 한편, 시편 91,10-12도 생각나게 한다. 하느님은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당신을 의지하는 이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모든 길에서 지켜주실 것이다. 이 환시에 힘입어 야곱은 훗날 가나안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창세 33,18). 그리고 자신의 서원을 지켜 베텔에 제단을 쌓고, 식솔들에게는 낯선 신들을 모두 버리게 했다(창세 35,2.4.7).

베텔의 전경.



야곱이 꿈에서 본 천상의 계단 덕에, 베텔은 일정 기간 동안 거룩한 장소로 여겨졌다. 판관 시대에는 베텔에 계약궤를 두고 번제물과 친교제물을 바쳤고(판관 20,26-27), 사무엘 시대에도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베텔로 가곤 했다(1사무 10,3). 그러다가 기원전 10세기 후반에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운 예로보암은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려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까 봐, 베텔에 송아지 제단을 세우기에 이른다(1열왕 12,29-31). 사제들도 임의적으로 선정했다. 단에도 동일한 송아지 제단을 만들었으므로, 그가 북왕국 국경 도시들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단은 북쪽 경계, 베텔은 남쪽 경계다. 예로보암이 베텔을 택한 까닭은 야곱이 본 환시와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베텔은 초기의 신성함을 잃고 죄의 원천으로 타락해 더 이상 하느님의 집이 아니게 된다(호세10,15: “베텔아 너희가 그렇게 되리라. 너희가 지은 그 큰 죄악 때문이다. 새벽녘에 이스라엘 임금은 반드시 망하리라” 참조). 북왕국 백성은 베텔의 송아지 상을 하느님인 양 섬기기까지 했다(호세 8,6 참조). 그래서 기원전 622년 요시야 임금이 종교 개혁을 단행한 뒤에는 베텔의 제단과 산당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2열왕 23,15). 지금은 베텔 유적지에 돌무더기와 정체를 알기 힘든 건물의 일부만 남았다. 하지만 그 위로 빛나는 푸른 하늘은 여전히 천사들이 오르내린 그 최초의 계단 환시를 상상하게 해 준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0월 18일, 김
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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