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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신약성경의 기도: 즈카르야의 노래 - 루카 복음서의 기도 해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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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0-21 조회수5,749 추천수1

[신약성경의 기도] 즈카르야의 노래


루카 복음서의 ‘기도’ 해설 3



이번 호에서는 루카 복음서의 유년 이야기에 나오는 세 가지 찬미가 가운데, ‘즈카르야의 노래’(1,68-79)를 선택하여 살펴본다. 즈카르야의 노래는 그 자체로 풍요로운 내용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 전례의 유구한 전통 안에서 성무일도의 아침기도로 날마다(많은 경우에 아름다운 멜로디로) 바쳐져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 기도이다.

또한 세상의 갖가지 어려움에도, 평화로 이끌어주시는 구세주에 대한 굳센 믿음과 희망을 갖게 하는 기도이다.


맥락

루카 복음서 ‘유년 이야기’라는 맥락에서 볼 때, 즈카르야의 노래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 뒤에 아버지 즈카르야가 하느님을 찬양하며 드리는 기도이다.


문학양식

기본적으로 ‘찬양시’라는 시편의 문학양식을 따른다. 시편의 찬양시에는 으레 시작 부분에 찬양을 촉구하는 표현(예컨대, “찬양받으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나오고, 이어서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열거된다. 여기 즈카리야의 노래에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라는 표현 다음에, 찬양의 이유가 되는 하느님의 구원행위들이 열거되어 있다.


찬미가의 공동체적 성격

즈카르야의 노래 전반부(68-75절)에 나오는 동사의 주어는 대부분 ‘하느님’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행위들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의 개인 가정에 관한 것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고,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어 있다. 바로 이 점, 곧 즈카르야의 노래가 지닌 공동체적 차원은, 시작 부분(68절)에 나오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라는 표현 말고도, 이 노래에 나오는 그 많은 “우리”라는 단어만 살펴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원수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 우리 조상들, 우리 조상 아브라함, 우리 하느님, 우리 발” 등.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의 신앙고백을 할 때, 감사하는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것만을 말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그때까지 베풀어주신 구세사까지 술회한다(신명 26,5-10 참조). 마찬가지로 즈카르야도 자신이 직접 겪은 은총의 체험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베푸신 구세사를 되새기면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현대의 우리 신앙인도 감사기도를 할 때 이런 측면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요 구절의 해설

“아기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67절).

즈카르야가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벙어리 상태에서 풀려나 다시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으려면 ‘성령으로 가득 차’는 변화가 필요했다(이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지난 9월호 참조).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주님(야훼님)은 찬미받으소서.”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바룩 아도나이’라고 하는데, 구약성경 특히 시편에서 자주 사용된다(18,47; 28,6 등).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에서 ‘이스라엘’을 오늘날의 국가 ‘이스라엘’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국가 이스라엘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의 아랍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으며, 이른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강한 나라이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성경 시대의 이스라엘은 주변의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계속해서 지배를 받으며 고통 받던 백성이었다. 계속되는 고통 속에서 결정적인 자비와 구원을 가져다줄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려온 백성이었다.

이 점을 루카 복음사가는 즈카르야의 노래에 앞서서,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이미 표현하였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주님의 종 이스라엘”(루카 1,54)은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비천한 이들’, ‘굶주린 이들’의 연장선에 있다. 노래하는 마리아도 그 중의 하나로 표현되어 있다. 마리아의 노래에 나오는 ‘주님의 종 이스라엘’의 상태가 ‘즈카르야의 노래’에도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79절의 말씀처럼 즈카르야의 노래에서 찬양받으시는 ‘하느님’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까지 찾아오시는 하느님이시다.

주 하느님께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충실하신지 구약성경에서 줄기차게 증언하고 있듯이, 신약의 하느님의 백성도 즈카르야의 입을 통해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주시려는 것입니다”(74-75절).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자유’는 그 자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한 자유’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던 것이 결국 “주 하느님을 섬기며 살기 위한 것”(탈출 5,2.9; 8,23)이었던 것처럼, 즈카르야의 노래에서도 “원수들의 손에서 해방되는 것”은 ‘두려움 없이…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을 섬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거룩함’이라는 단어에 ‘의로움’이란 단어가 더해짐으로써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 섬김’이 다만 제례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삶 전체를 통한 섬김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최근에 필자는 즈카르야의 노래에 나오는 ‘두려움 없이 하느님을 섬기도록’이라는 표현에 관하여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이, 실제적인 ‘두려움’을 뜻한다고 보아야 이 표현이 지닌 의미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빈번했던 전쟁과 박해의 두려움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극심한 병고와 가난의 두려움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두려움 없이, 평화로운 가운데,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렇게 즈카르야의 노래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향한 기쁜 소식이다.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이 문장에서 ‘별’이라고 의역된 그리스어 ‘아나톨레’는 직역하면 ‘떠오름’을 뜻하는데, 정확한 의미를 찾기 어려워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이를테면 공동번역과 ‘성무일도의 아침기도’에는 ‘태양’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새벽’이라고 번역된 외국 번역본도 있다.

‘떠오름’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다윗의 후손과 관련되어 사용되는 것을 보면, 즈카르야의 노래에서 ‘떠오름’이라는 단어는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다”(79절).

이 문장에서 ‘평화’라는 말은 크게 보면, 메시아를 통해 선물로 주는 총체적 구원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즈카르야의 노래라는 문맥에서 좁게 보면, 메시아에 의해 ‘원수들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되어’(71.74절) ‘죄의 용서를 받고’(77절) ‘거룩함과 의로움 속에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75절) 평화의 상태를 말한다.


묵상

즈카르야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지난날에 베푸신 구원행위들에 대한 종합적 관찰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를 읽는 후대의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자신의 현재의 삶을 지난날에 이미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행위의 빛 속에서 보게 한다. 동시에 장차 하느님과 갖게 될 친교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게 한다.

복음서가 증언하는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 각자의 삶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도록 마음의 눈을 열어준다. 즈카르야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의 행위에 앞서서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벙어리같이 하느님을 찬양할 줄 모르는 삶’에서 풀어주시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한다.

즈카르야는 권능에 차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행위를 의심하게 되자 벙어리가 되었다(1,20). 그는 소리내어 하느님께 기도할 수도 없었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여기 즈카르야의 경우에 우리는 상징적으로, 하느님께 올바른 말씀을 드릴 수 없게 되면, 깊은 의미에서, 이웃 인간에 대해서도 올바로 의사전달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본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이럴 때 우리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적인 눈을 하느님께 들어 높여주는 성령이 필요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되어야 한다.

메시아이신 주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의 노래에 나오듯이, “높은 데서 별[빛]”을 비추어주신다. 그분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방향을 잃게 된다. 마치 죽음의 어두운 그늘 속에 갇혀있는 삶처럼 되고 만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하는 삶에는 빛이 있고, 따스함이 있고, 방향이 있다(요한 8,12 참조). 거기서 우리는 평화와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이 길은 죽음을 피해가지 않지만, 죽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즈카르야의 노래를 날마다 아침기도 때 노래한다. 주님께서 긴긴 밤의 어둠을 헤치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어 ‘평화의 길’로 이끄신다는 믿음과 희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 김영남 다미아노 - 의정부교구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과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교 신학부와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특히 바오로 서간)을 전공하였다. 최근 「로마서」(성서와 함께, 2014년)를 저술했다.

[경향잡지, 2015년 10월호, 김영남 다미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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