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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성경 속 도시66: 다니엘 예언자가 활동했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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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01 조회수5,007 추천수2

[성경 속 도시] (66) 다니엘 예언자가 활동했던 ‘수사’


에스테르 왕비의 남다른 민족애 서려

 

 

수사는 옛 페르시아의 수도이며 선사시대에서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란 문명의 정치ㆍ경제적 중심이 됐던 고대도시다. 

 

수사는 50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기원전 4000년경부터 엘람 민족이 거주해 신석기 문화를 이룩했다. 수사는 기원전 7세기에는 북부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았고, 기원전 331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됐다. 4세기 때는 수사의 그리스도교인들이 탄압을 받으며 수사 성이 파괴됐고, 13세기경에는 몽골 침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 그 후 점차 쇠퇴해 오늘날에는 중소도시 규모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수사 성 궁전터는 19세기 말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됐는데 역사 자료에 의하면 수사 궁을 건축할 때 외국에서 많은 재물과 보화 등을 가져왔고 벽 장식품들은 이오니아, 상아는 에티오피아에서, 돌기둥은 엘람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각국에서 목수 석수 등 기능공들이 징발돼 왔다고 하니 수사 궁의 사치와 화려함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수사는 바빌론으로 유배된 이스라엘 포로들이 살던 곳 중 하나다. 그래서 유배지였던 이곳은 다니엘 예언자와 느헤미야 예언자의 무대였고 에스테르 왕비의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다니엘은 어느 날 수사 성의 종말에 대한 환시를 본다(다니 8,2-3). 다니엘 예언자는 예언 활동을 통해 암울한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장차 누리게 될 영화로운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려고 힘썼다. 

 

느헤미야는 수사 궁에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날을 슬퍼하고 단식하며 하늘의 하느님 앞에서 기도했다. “내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몇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왔다. 나는 포로살이를 모면하고 살아남은 유다인들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포로살이를 모면하고 그 지방에 남은 이들은 큰 불행과 수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에 탔습니다’”(느헤 1,2-3). 

 

성경에서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사가 무대가 된 대표적 인물은 역시 에스테르다. 구약의 에스테르기는 크세르크세스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는 127개 주를 다스리고 있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사에는 모르도카이라는 유다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용모가 빼어난 에스테르라는 양녀가 있었다. 나중에 에스테르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왕후가 되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재상인 하만의 계략에서 동족인 유다인들을 구했다(에스 1-7장 참조). 

 

이 사건에서부터 ‘부림절’이 유래되었는데 사실 부림절은 성경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지키는 민족 축일이다. ‘부림’이란 주사위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푸르’에서 나온 것으로 에스테르서에 나오는 하만이란 인물이 유다인들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할 때 그의 부하들이 주사위를 던져 날을 정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임금 제십이년 첫째 달인 니산 달에 하만이 자기 앞에서 푸르 곧 주사위를 각 날과 각 달에 따라 던지게 하니, 열두째 달인 아다르 달이 나왔다”(에스 3,7).

 

수사는 어느 도시 못지않게 오랜 세기를 걸쳐 영욕의 역사가 이뤄졌던 현장이지만 현재는 유적들의 작은 흔적만 남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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